일방적 공격으로 일방적 승리를 거둔 미국이지만 이라크전쟁을 개전하던 날 백악관엔 엄청난 중압감과 초조함이 지배했다고 한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전한 그 날 백악관의 대통령주재 회의는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고, 항상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바로 옆 자리에 앉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대통령의 손을 잡아줘야 했다던가. 큰 결정을 앞둔 지도자들의 심정과 표정은 대개가 그럴 것이다. 참석자들에겐 아마 예측이 어려운 전쟁으로 나라를 끌고 가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재작년 9·11테러를 당하고 응전을 결심했던 부시 대통령과 미국 지도부의 아프간 전쟁 과정은 이보다 훨씬 비장했다. 분노와 슬픔이 함께 뒤범벅이 된 상태에서 초기 며칠 사이 백악관은 우왕좌왕하기까지 했다. 퓰리처상 수상기자 밥 우드워드의 책 '부시는 전쟁 중'은 감정이 북바치던 당시 부시 대통령이 전쟁대책을 지휘하다 두어 차례 눈물을 보이는 장면들을 전하고 있다. 테러공격 이틀째 부시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과 화상회의를 갖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언론에 공개된 이 회의에서 부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 분(희생자)들 가족과 어린이들"이라며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돌렸다고 한다. 그는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 정으로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도 못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다. 그도 대통령 당선 전후로 눈물을 몇 차례 보였었다. 그는 감성과 감상이 유달리 돋보이는 대통령이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는 "국민의 정부가 겪었던 (실패의) 과정을 비슷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고 우울함과 불안감을 고백했다. 이제 막 시작한 새 정부의 대통령이 한 말로 들리기가 어려울 정도의 감상의 표출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노 대통령은 "그 인터뷰에서는 엄살을 좀 떨었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보니 감상에서 깼다는 말쯤 되는 것인지, 어느 장단에 맞춰 들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 18일 새벽 청남대에서 썼다는 대국민 편지에도 감상적 어법이 진하게 느껴진다. "묵묵히 가면 저를 이해하게 될 것" "겸손한 마음으로…기다릴 것" 등의 표현은 강한 다짐인 것 같지만 매우 감상적인 터치이다. 대통령도 인간이라 감성을 드러내고 감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평소 지도자의 잦은 감상은 통제돼야 한다. 인간 이전에 대통령이어야 할 책무가 대통령에게는 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식의 감성화법은 여러 차례 '말의 문제'들을 낳았다. 며칠 전엔 정무수석까지 이를 지적했다. 노 대통령도 수천명이 희생된 참사 앞에라면 또 눈물을 흘릴지 모르겠지만, 부시 대통령의 말이 노 대통령처럼 문제시된 적은 없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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