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중심인 우루무치. 베이징(北京)에서 여객기로 4시간이 걸리고 시차도 2시간이나 나는 중국의 서쪽 변경지역이지만 오지의 탈을 벗어 던진 지는 오래다.비단길로 상징되는 신장은 재도약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각국과 러시아, 몽골 등 8개국과 접한 5,000㎞의 국경선을 활용한 변경무역(邊境貿易)을 통해서이다. 우루무치는 '제2 비단길'의 중심지인 셈이다.
신장의 변경무역이 시작된 것은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직후의 일이다. 90년대 초 구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국가들이 생겨나면서 변경무역이 본격화했다. 또 94년 장쑤(江蘇)성의 리엔윈(連雲)항을 출발, 우루무치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중국횡단철도 개통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이 철도의 지난해 물동량은 600만 톤에 달한다.
니자트 야신(위구르족·42) 신장 변경무역관리국 부국장은 지난해 변경무역액이 26억 달러로 전년에 비해 52.2% 늘었다고 말했다. 92년 1억 달러에 못 미치던 교역액이 10년 만에 26배가 늘어난 셈이다. 변경무역이 지난해 신장의 전체 무역에서 차지한 비율은 57%에 이른다.
최대 변경무역 상대국은 카자흐스탄으로 상호교역액이 13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위는 러시아(2억1,500만 달러), 3위는 키르기스스탄(1억5,000만 달러)이다. 니자트 부국장은 "주변국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변경무역액도 늘 것"이라며 "신장과 중앙아시아 경제는 윈-윈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변경무역은 국경선과 우루무치 시내에 설치한 총 25개의 커우안(口岸)을 통해 이뤄진다. 커우안은 국경통로이자 세관, 도·소매 시장을 겸하는 복합기능을 갖고 있다. 국경선과 국제공항에 설치된 것은 '1종 커우안', 우루무치와 신장의 제2도시인 카스 시내에 설치된 것은 '2종 커우안'으로 불린다. 우루무치 시내의 2종 커우안인 변경상무성(邊境商貿城)은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곳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의류와 생활용품, 신장의 특산품 등이다. 시장건물 밖에서는 물건이 박스에 포장돼 즉석에서 트럭에 실린다.
변경무역을 통한 신장의 수출품은 가전용품에서 농산물까지 다양하다. 공업제품은 중국 연안지역에서 생산된 것이고, 쌀은 동북3성 지역에서 가져와 판다. 사과 등 각종 과일과 방울토마토, 채소 등은 신장 현지에서 수확한 것이다.
수입품은 주변국에서 싣고 온 강철재료와 구리 등 비철금속, 목재가 주류를 이룬다. 중국 정부는 수출품에 대해서는 무관세, 수입품에는 상품별로 책정한 관세를 붙여 수출을 장려하고 있다. 커우안에는 신장 현지인보다 외지 상인이 더 많다. 장쑤성과 저장(浙江)성 출신 한족이 특히 많다. 외국인도 등록만 하면 무역을 할 수 있다. 당국은 무역확대를 위해 보따리 상인에 대한 단속을 엄격하게 하지 않는다.
무역이 커우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우루무치 시내 백화점과 도매시장도 변경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구 208만 명인 우루무치 시내에 대형 백화점과 도매시장이 각각 10개가 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루무치 시내 신장 자치구 정부청사 인근의 톈산(天山)백화점. 지하 1층과 지상 5층의 총6개 층 매장을 가득 채운 상품이 한국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상품 브랜드도 중국제에서 세계 일류 명품까지 없는 것이 거의 없다. 문구코너의 몽블랑 만년필은 7,436위안(118만9,700원)이란 가격표를 붙이고 있다. 유럽제품은 거의 수입품인데 비해 대만, 홍콩 브랜드는 원산지 표시가 광둥(廣東)성이나 상하이(上海)로 돼 있다. 대만과 홍콩기업이 중국에서 저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해 현지에서 판매하는 전략을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전자제품 매장에는 LG전자와 일본의 소니, 중국의 하이얼(海爾) 등이 나란히 경쟁하고 있다. LG의 대형 액정TV에는 '깜짝 놀랄 할인'이란 광고와 함께 9만9,800위안짜리를 9만900위안(1,454만원)으로 내린 가격표가 붙어 있다. LG매장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안(安)씨는 "소니 등 일제가 전통적으로 지명도가 높지만 최근 한국제품의 인기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장 자치구 정부가 구상하는 우루무치의 미래는 '중국 서부의 국제 상업무역도시'다. 하지만 이 구상이 조기에 실현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리훙보(李洪波·49) 신장 자치구 서부개발판공실 처장은 "가난한 중앙아시아 각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변경무역의 규모가 급격히 커지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글·사진 우루무치=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신장자치구 한국기업
신장자치구와 한국은 19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교역을 시작했다.
91년 무역액이 1,209만 달러에 달했으며 지난해 상호교역량은 4,936만 달러로 신장이 4,204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1∼2월 교역량은 942만 달러에 이르러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5.8%가 늘었다.
신장의 대 한국 수출품은 면화, 약재 등 농산품과 식물사료, 광물 등이다. 수입품은 강판과 건설기계 및 부품, 자동차 등인데 매우 소규모이다. 중국 최대 면화 산지인 신장은 특히 한국의 섬유산업을 겨냥해 수출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신장에 투자한 한국기업은 올해 3월 현재 13개로 계약투자금액은 총 1,148만 달러다. 굴삭기 분야의 대우(등록자본 300만 달러)와 화공분야의 한화(300만 달러)는 신장에서 상당한 지명도를 누리고 있다. 이밖에 의류·방직업체 4개, 화공업체 1개, 포장업체 1개, 자동차 수리업체 1개, 건강보조식품업체 1개가 조업중이다. 한국의 신장지역 투자는 일본이나 대만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한국기업의 최대 투자 걸림돌로는 운수문제가 지적된다. 황해의 리엔윈(連雲)항에서 우루무치까지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데는 열차로 10일, 자동차로 4∼5일이 걸린다. 이 때문에 상당수 한국기업들은 원부자재를 한국에서 직접 가져오기 보다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 장예 경제합작청 부청장
"서부가 동부 연안지역에 비해 경제수준이 낮다고 해서 한국에서 한물 간 산업을 이전하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신장자치구가 동부 연안에 비해 발전이 뒤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규투자의 출발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곳에 투자하는 서구기업들은 모두 선진 생산설비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장예(張野·53·사진) 신장자치구 대외무역경제합작청 당서기 겸 부청장은 서부 투자에 있어서 낙후지역이라는 편견을 갖는다면 실패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장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의 투자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신장의 풍부한 자원과 1차산업을 이용한 가공생산업에 주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장지향적 투자다. 특히 시장지향적 투자는 신장 뿐 아니라 인접한 중앙아시아 각국 시장을 함께 겨냥하고 있다.
신장이 중앙아시아 시장 공략의 발판으로 부상함에 따라 우루무치는 유라시아 대륙 중부의 선도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우루무치 시장에서 일단 경쟁 우위를 확보한 상품은 중앙아시아 시장에서도 환영 받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상품 중 신장자치구에서 지명도가 높은 제품은 의류와 화학섬유, 방직품 등이다. 그는 한국산 넥타이와 수영복, 물안경 등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신장의 풍부한 자원과 한국의 제조업 노하우를 결합하면 윈-윈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신장에 한국의 브랜드와 기술을 홍보하고 한국에는 신장의 잠재력을 알릴 수 있는 각종 교류 행사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과는 오래전부터 이 같은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루무치=배연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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