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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 PD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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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 PD라면

입력
2003.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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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반갑다. 공중파 방송마다 시청자 사연을 소재로 그럴듯한 재연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때로는 TV가 시청자의 고민 해결사로 자처한다. 과거 오락 프로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거나 농담만 늘어놓았던 데 비해 의미 있는 변화다.KBS 2TV가 최근 신설한 ‘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화요일 밤 11시)도 이런 기대를 받았다. ‘논쟁…’은 시청자의 고민거리에 대해 20명의패널이 자신들의 직ㆍ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하는 형식이다.

제작진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안건에 대한 고민을, 토론을 통해함께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연예인들의 열띤 논쟁 그리고 네티즌의 의견수렴을 통해 현대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점검해본다는 야심찬 의욕도 내비쳤다.

그러나 1, 2회가 방송된 지금 과연 ‘논쟁…’이 이런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15일 2회 방송에서는 이혼녀인 하숙집 아줌마의 계속되는 유혹에 괴로워하는 젊은 하숙생의 사연을 재연드라마를 통해 보여줬다. 비록 애니메이션형식이기는 하나, 가슴을 반이나 드러낸 야한 옷을 입고 나온 하숙집 아줌마는 하숙생 앞에서 문을 열어놓고 샤워를 하는가 하면, 성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도록 야하게 딸기를 먹는 엽기적인 여인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프로그램이 애초 내세웠던 딜레마 상황이 아니다. 패널로 나온 한 변호사가 지적했듯이 “깨끗이 하숙집을 나가면 해결될 문제”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하숙생의 고민에 대해 패널로 출연한 이혁재가내놓은 “로맨스를 즐기다 군대가라”는 어이없는 조언이 찬성표를 18표(반대 2표)나 얻었다는 점이다.

시청자의 고민을 해결해주겠다는 취지는 온 데 간 데 없고, 시청자 사연이 오락의 소재로 전락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8일 첫 방송 주제였던 ‘의붓 아버지의 아들을 사랑한 여자’ 란 소재 역시 평균의 한국인이 가지는 고민과는 거리가 멀다.

패널들의 토론 태도도 문제다. 상대방이 발언하는 도중에 말을 끊기는 예사고 논리보다 큰 목소리를 앞세우거나, 사연 당사자의 입장을 희화화하는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이게 무슨 토론 프로냐” “논쟁 버라이어티가아니라 언쟁 버라이어티다” 등 게시판에는 네티즌의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논쟁 버라이어티 폐지를 놓고 우리가 논쟁을 해보자”는 제안까지나온다.

굳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고민을 들어줄 곳은 많다. 방송이 시청자의 고민해결사로 나설 때는, 특히 ‘논쟁…’처럼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시청자가 공감하는 적절한 주제와 건전한 토론방식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가 만약, ‘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 PD라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제로 논쟁을 이끌어내겠다는 생각을 버리겠다. 당장은 논쟁이 시청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토론문화가 실종된 논쟁은 ‘언쟁’으로변질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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