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베이징(北京) 3자 회담 개최를 공식화한 지 하루 만에 10차 남북장관급 회담 개최를 전격 제안한 것은 핵과 관련한 미국의 압박을 남북대화 카드로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남한, 미국과 모두 대화하겠다"는 '통미통남(通美通南)' 의도를 천명, 남한 당국의 대미 발언권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의 군사·경제 제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남북대화를 북미 대립구도의 완충제로 활용하려 한다는 뜻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RSOI)이 끝나 북한으로선 더 이상 회담을 거부할 명분도 없다. 쌀과 비료 지원이 절실한 참에 남측이 비료 지원 의사를 밝히는 등 대화 분위기를 조성한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당국간 회담이 개최돼야 쌀과 비료 등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3자 회담 배제로 인해 남측 여론이 나빠지고 있으므로 뭔가 남한 정부에 '배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3자 회담과 남북회담을 거의 동시에 개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의제와 성격, 대화주체의 면에서 두 회담을 구분하고, 결과적으로 남한의 다자회담 참여를 저지하려는 게 북한의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다시 말해 3자 회담서는 미국을 상대로 핵과 체제보장 문제를 다루고, 남북대화에선 남한을 상대로 남북 문제를 논의하는 식으로 두 회담의 경계를 구분 지어 결과적으로 남측의 3자 회담 진입을 막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회담이 열리면 노무현 대통령 취임이후 첫 고위급회담이기 때문에 새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양측의 의견 교환 등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장관급회담이 통상적으로 교류협력사업을 다뤄온 점에 비춰 일단 주 의제는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과 개성공단사업, 금강산 관광사업 등 3대 현안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 해결과 경협을 병행 추진한다는 게 공식 방침인 만큼 우리측은 다자 회담 참여를 강력히 주장할 게 확실하다. 하지만 북한은 핵 문제가 북미간 현안임을 강조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북한은 관례대로 이번 회담에서 쌀 지원을 공식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비료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봄철 파종기에 맞춰 조기에 무상 공급하되 쌀은 장관급회담 논의 후 실무협의를 거쳐 장기저리 차관 형식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북한이 대북송금 특검 수사와 관련해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정부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대북 결의안 채택과 관련한 국내 비판여론에도 불구, 이번 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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