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반드시 가능한 일도 없고, 반드시 불가능한 일도 없다'는 말이 있다. 정부 관료와 손 잡으면 무슨 일이든 일사천리로 이뤄지고,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당연히 성사될 일도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된다는 얘기다.이처럼 막강한 힘을 지닌 관료들도 두려워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CCTV1에서 매주 월∼금요일 오전 8시36분에 방송하는 시사프로 '초점방담'(焦点訪談)이다. 9년의 역사를 지닌 이 프로는 '국내 문제에 관한 한 나쁜 뉴스는 전하지 않는다'는 중국 언론의 불문율을 깨고 어두운 면도 많이 다뤄 시청률 1,2위를 다투는 인기 프로로 자리잡았다.
최근 방송된 '나의 옥수수 밀거래 경험'을 보자. 중국 내 모든 기업은 '공상국' '공상소' 등 공업·상업 관리기관에서 허가 받은 범위 안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는데, 이 기관 실무자들이 불법 영업을 눈감아 주고 '수고비'를 챙기는 일이 적지 않다. 이 프로는 국가가 통일적으로 수매를 관리하는 옥수수가 이들 공무원들의 보호 아래 밀거래 되는 실태를 추적해 폭로했다. 방송 직후 해당 공무원이 파면 처분됐다는 후문이다.
'한 아이가 물에 빠지고 난 뒤'편은 닝샤 자치구 우쭝시 부시장이 탄 차량이 좁은 다리에 무리하게 진입하다가 자전거를 탄 여자아이를 친 사건을 다뤘다. 부시장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지 않고 지나쳐 결국 익사하게 만들어 시청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초점방담' 이전에는 이런 보도를 상상할 수 없었다. 특히 '초점방담'이 다루는 사건의 범위는 점차 지방에서 중앙으로, 말단 관리에서 중급 관리로 확대되고 있다. '개혁 총리'로 칭송 받던 주룽지 전 총리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이 프로를 본다"고 밝혔다. 이 프로가 중국의 개혁에 있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프로 역시 '언론은 정부의 입이요, 혀'라는 원칙대로 중앙 정부의 핵심부가 결정한 정책에 대해서는 정면 도전하지 않는다.
일례로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SARS·급성중증 호흡기증후군) 사태를 '초점'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거꾸로 중국 언론은 사스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며, 중국은 여전히 안전한 국가이며, 핵심 지도자들이 이 문제에 얼마나 성의를 갖고 있는지를 보도하는데 열을 올린다. 베이징 전체가 흉흉한 소문에 휩싸이고, 시민들은 예방 효과가 있다는 한약재를 사기 위해서 길게 줄을 늘어섰는데도 말이다.
'초점방담'은 중국 정부의 정보공개 정도가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척도로서 중국인들은 이 프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사스의 예에서 보듯 다른 한편으로는 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이재민·중국 베이징대 대학원 박사반(중국 매체·문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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