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달 착륙에 비견할만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4일 미국·영국·프랑스 등 6개국으로 구성된 국제컨소시엄인 인간게놈지도작성팀(HGP·Human Genome Project)이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하자 전문가들은 의학혁명의 신기원이 마련됐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0년 6월26일 HGP가 발표한 인간게놈지도 초안은 31억개에 달하는 DNA 염기서열 가운데 97%를 해독했으나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도 5만군데나 돼 상당한 결함을 안고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 공백을 400군데로 줄인 99.99% 정확도의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된 것이다.'꿰지 않은 구슬' 인간게놈지도
게놈이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단어로 생물에 담긴 모든 유전정보를 의미한다.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했다는 것은 DNA(디옥시리보핵산)를 구성하는 31억쌍의 염기 서열을 밝혀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게놈연구는 영국의 제안으로 1990년 발족한 인간게놈기구(HUGO)가 중심이 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6개국 18개 기관의 3,000여 과학자가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
인간게놈지도의 완성은 암, 당뇨병,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 비만 등 4,000여종의 난치병 치료와 인간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인간게놈지도 완성으로 단시일 내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지적한대로 인간게놈지도 완성은 누구나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생명의 책'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비밀이 적힌 책과 별 의미가 없는 책들이 무작위로 진열된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유전자 기능이 무엇인지,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지 등을 밝혀내지 않은 인간게놈지도는 '꿰지 않은 구슬'에 불과하다.
하지만 10여년 전 '무모한 계획'이라는 비판 속에 시작된 인간게놈연구가 예상보다 빨리 성과를 이룩했듯이 '포스트 게놈 연구'도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생명현상의 소프트웨어' 유전자
인간의 몸은 10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세포에는 핵(核)이 존재하고 그 속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염색체가 들어 있다. 염색체의 숫자는 생물의 종에 따라 다른데 인간세포의 경우 23쌍(46개)이다. 염색체 속에는 생물의 생로병사와 관련된 모든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인간의 염색체 속에는 3만개의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는 생물이 태어나 성장하고, 병에 걸리고, 늙어 사망하는 것은 물론 모든 생리현상을 조절·통제하는 생명현상의 '소프트웨어'다.
염색체와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은 DNA. DNA는 크게 당, 인산, 염기로 구성돼 있다. DNA는 이중나선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1953년 4월25일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내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DNA의 이중나선구조에서 사다리 기둥에 해당하는 부분은 당과 인산 분자로 만들어져 있으며, 발판에 해당하는 부분이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아데닌(A)과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4가지 염기다. 이들 4가지 염기가 DNA상에서 배열돼 있는 순서를 'DNA 염기서열'이라고 한다. 이번에 밝혀진 것이 바로 31억쌍에 달하는 염기 배열의 순서다.
31억쌍의 모든 염기에 유전자 정보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고, 3만개에 달하는 특정 부분에만 유전정보가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유전자에 해당된다.
의학혁명의 시발점
인간게놈지도 분석결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DNA 염기서열로만 보면 99.95%가 똑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인종과 외모, 질병 등의 차이는 0.05% 정도의 DNA 염기서열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상의 모든 개인 사이에는 31억쌍의 DNA 염기서열 가운데 140만 곳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DNA 염기서열의 차이를 '단일 염기 변이(SNP)'이라고 한다. 140만개에 달하는 SNP가 실제로 사람의 몸에서 어떤 차이를 유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포스트 게놈 연구'의 과제다. SNP가 인체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개인마다 어떤 차이점을 만들어 내는 지가 밝혀지면 질병을 치료할 때 이런 정보를 활용해 환자의 유전자 특성에 꼭 들어맞는 의약품이나 치료법을 적용하는 '맞춤 의학(tailored medicine)'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하루에 개인의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분석비용도 현재 30억원에서 100만원 정도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유전정보를 담은 'DNA 칩'을 목걸이나 몸 속에 넣고 다니며 병원 진료시나 응급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SF영화 '가타카'에 손가락 피 한방울로 순식간에 유전정보를 판독해 지문처럼 본인 여부를 아는 장면이 나오는데 DNA 칩은 이런 영화의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기술이다.
반면 유전자 정보의 개인 프라이버시 공개 등 인권침해의 우려도 있다. 과학적 근거 없이 상업주의에 휩쓸린 '유전자 결정론'을 내세우며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유전자 서비스도 생길 우려도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서정선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책임연구원>도움말=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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