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만큼 판본이 많고 해석이 구구한 고대 문헌도 드물다. 국가 주도 편찬이 아닌 개인 저술이어서 출간 시기에 따라 판본의 표현과 글자가 다르고, 오·탈자도 많기 때문이다.하지만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고대 정치 사회 문화 생활사를 낱낱이 보여주는 기록으로 관련 분야에서 끊임없이 인용되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판본을 하나하나 대조해 가며 원본의 잘잘못을 바로 잡고, 정확히 국역하는 교감(校勘) 작업이 필요하다.
2002년 고려대에서 '삼국유사의 편찬과 간행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하정룡(33·성보박물관 선임연구원)씨가 최근 삼국유사 목판본 13종을 비교 검토한 후 국역한 '교감 역주 삼국유사'(시공사 발행)를 냈다. 그는 학위 논문에서 "삼국유사 초간 시기가 고려가 아니라 조선 초이며, 따라서 고조선 기록 등을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던 주인공이다.
이번 교감 작업도 삼국유사 초간 시기와 집필자에 대한 고증에서 출발했다. 하씨는 초간이 조선 건국 2년 후인 1394년에 공동 저작 형태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 근거로 일연의 비문에는 물론, 그의 제자로 삼국유사 집필에 간여한 무극의 비문에도 삼국유사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또 1360년대, 즉 공민왕 때 완성된 백악궁이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인용된 것을 보아 출쇄 시기는 그 이후가 되고, 삼국사기와 세트로 간행된다는 점에서 결국 1394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이때는 무극이 입적한 후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가필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초 이런 주장은 기존 학계의 반발을 불렀다. 고조선 관련 부분이 조선시대에 집필됐다면 단군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논문이 발표된 후 서지학계의 권위자인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아 힘을 얻고 있다.
2001년부터 일본 고야산(高野山)대 밀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그는 "국내 삼국유사 연구 성과가 일본에 비해 부진한 이유는 서지학적 접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출간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역주본 등 30여 종의 번역·주석본 대부분은 오류가 많은 후대 판본을 번역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고, 일부는 사전적 단어 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고판본 소장자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여기저기 사진으로 소개된 것과 복사본을 통해서만 연구를 진행했다"며 "국가 지정문화재의 경우 학술연구 목적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의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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