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올려, 올려∼어!" "따라붙어! 앞에서 막아야지!" 17일 오전 서울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 축구장. 봄 같지 않은 더운 날씨 속에서 열심히 공을 쫓으며 질러대는 아줌마들의 고함소리가 강바람을 갈랐다. 마포여성축구단 선수들의 연습시간. 선수 30여명 가운데 14명이 나와 30대, 40대 나이별로 편을 갈라 연습게임을 했다. 1시간여 달리기와 개인기 연습, 그리고 이어진 40분간의 연습경기. 이렇게 2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렸지만 하나같이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오히려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그도 그럴 것이 마포여성축구단은 최근 여성 축구계의 '전국최강' 지위에 올랐다. 전국 24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12, 13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여성부 장관기 전국여성축구대회에서 우승한 것. 대회 때마다 준우승에 머물렀던지라 선수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실력과 역사로 봐서는 진작에 해야 하는 우승이었다. 1998년 축구해설가 신문선씨의 제안으로 마포구청 여성축구교실로 시작해 2000년 7월 송파구에 이어 서울시의 두번째 팀으로 창단했다. 창단 직전 국내 여성국제심판 2호 최수진(30)씨가 코치로 합류, 지금껏 실력 향상을 돕고 있다.
17일 경기장 밖에서 고함을 치던 최 코치는 팀원들을 '축구광'이라 했다.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전에는 연습 쉬자는 말을 하지 않고, 겨울에는 눈이 내려도 공을 차자고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해요."
지방으로 이사하거나 직장을 얻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만두는 일이 없다. 그래서 창단 멤버 20여명은 대부분 지금까지 남아있다. 연습일인 매주 화·목·토요일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나와 몸을 푼다.
왼쪽 풀백을 맡고 있는 정미숙(42)씨는 용산구 한남동에 산다. 연습장까지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 그런데도 빠지는 일이 없다. "축구를 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생활에 자신감도 생겼고요." 정씨는 3년 전 친구 따라 왔다가 축구에 빠졌고, 이번 대회에선 철벽수비로 MVP가 됐다.
단원들은 '가족 같은 팀 분위기'를 우승의 원동력으로 꼽는다. 50대와 60대 각각 2명, 30대 6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40대이고 다 기혼자다. 감추거나 에두르지 않고 모든 걸 터놓고 지낸다.
창단 멤버이자 최고 연장자로 팀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심정순(66)씨와 김숙자(64)씨는 '왕엄마'라 불린다. 최 코치는 "두 분이 딸처럼, 며느리처럼 팀원을 아끼고 배려한다"며 "이 분들이 빠지는 날은 허전할 정도"라고 말했다. "아플때도 한번 뛰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김씨는 "젊은 엄마들과 어울리니 마음이 젊어진다"고 예찬론을 편다. 98년 축구교실부터 참여해 온 주장 서옥경(41)씨와 두 동생 은경(35) 혜경(29)씨는 3년 여를 함께 뛴 동료이기도 하다.
축구에서 얻는 것은 건강과 즐거움뿐이 아니다. 김상경(40)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경기 모습을 보고 일기에 '자랑스런 엄마'라고 썼다"며 "가정생활에도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팀원이자 구청 직원으로 축구단을 지원하고 있는 강명애 주임은 "저녁에 남편, 두 아들과 함께 한강공원에서 팀을 나눠 축구를 한다"며 "가족간에 축구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축구로 맺어진 끈끈한 정은 연말마다 지체장애인 집을 찾는 봉사활동으로 이어진다. 강 주임은 "올해는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 등으로 성금을 모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운동하는 어린 선수들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여성축구대회에서 우승, 아줌마 축구계의 '지존'이 됐지만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은 따로 있다. 큰 대회 결승에서 두번이나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은 송파구청팀을 누르는 것. 주장 서옥경씨는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사기가 높기 때문에 그 동안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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