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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36> 조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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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36> 조광한

입력
200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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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전이 고비에 접어들었던 지난해 12월4일. 부산 자갈치 시장의 어물전 여주인이 노무현 후보의 TV 찬조연설자로 나섰다. 이 연설은 이례적으로 12.4%의 시청률을 기록, 큰 반향을 일으켰다.노 후보에겐 천군만마와 같았고 미디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는 계기가 됐다. 이 '자갈치 아지매'를 발굴한 사람이 찬조연설준비단장이었던 조광한(趙光漢·45)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다. 당에서 잔뼈가 굵은 홍보맨으로 청와대의 각종 브리핑과 홍보시스템 기획, 간행물 발간은 그의 손을 거친다.

노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90년. '꼬마 민주당'의 당료 공채광고를 보고 입당한 것이 계기였다. 외국어대 중국어과 재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일하고 광고회사 경력도 쌓은 덕분에 당 선전국장을 맡았고 92년 이기택 총재 비서로 일했다. "당시 노 대통령과 자주 대화를 나눴는데 '사회의 그늘진 곳에 애정을 가진 정치인'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향점이 맞는다고 할까요?"

97년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운영하던 외곽연구소인 '팍스 코리아나 21' 사무처장으로 일하다 DJ의 대선 캠프에서 찬조연설팀 부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정원 기조실장이 된 문 실장의 보좌관으로 청와대와 국정원에 따라 들어가 일했다. 이 때문에 그는 '문희상맨'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2000년부터 노 대통령의 자치경영연구원 멤버로 참여하면서 측근그룹으로 호흡을 맞췄다. 경선 이후 당내 반목으로 책상조차 없던 시절, 매일 커피숍에서 전략회의를 열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 발상이 그의 특기. 92년 총선 당시 통일민주당 홍보물에서 김대중·이기택 대표의 얼굴을 뺀 것이 대표적인 예.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는 욕을 먹었지만 기성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 탓에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는 "매년 직업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순탄치 않은 이력을 지녔다. 정치권에 투신하기 전에는 무역·광고회사를 전전했고 이후에는 IT와 컨설팅 사업을 했다. 지난해에는 친형과 꽃집도 운영했다. 58년생이지만 '6수(修)'만에 대학에 합격해 학번은 81학번이다. "공부를 못해서…"라며 멋쩍게 웃으면서도 "몸은 475세대, 생각은 386"이라고 자랑한다. 여행을 좋아해 세계 45개국을 100차례나 돌아다녔다. "사람 사는 모습이 보고싶어 시장과 주택가를 누비고 다녔다"고 하니 정말 괴짜다.

그는 장래 토크쇼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꿈과 소망을 주는 '사람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정치요? 스스로 나서진 않을 겁니다. 정치는 꿈을 주지 못하잖아요."

/배성규기자 vega@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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