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지난달 중순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함에 따라 '한은 독립'을 둘러싼 재정경제부와 한은간의 해묵은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18일 "개정안은 한은 쪽 의견이 일방적으로 반영된 것인 만큼, 법안 논의과정에서 대체 토론, 정부의견 제출 등을 통해 반대의견을 적극 개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의원 108명이 발의한 개정안은 금융통화위원 중 재경부 몫이었던 민간 추천위원 폐지와 한은 부총재의 당연직 금통위원 임명 재경부의 한은 예산승인 폐지 한은의 금융기관 단독검사권 부여 등을 담고 있다.이는 한은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건의한 개선안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한은의 독립성은 32개국 중앙은행 가운데 29위, 금통위의 인적 독립성은 30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한은이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중립적인 통화신용정책을 펼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핵심 쟁점인 금통위 구성에 대해 한은은 "그동안 금통위원 7명 가운데 민간단체 추천 몫인 3자리가 사실상 재경부 입김에 따라 정부쪽 인사들로 채워졌다"며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관료 출신을 앉히는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경부는 "민간기관의 의사를 통화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민간추천제는 유지돼야 한다"며 "기존 관행은 민간 추천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한은 예산에 대한 사전승인제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완전 독립을 위해서는 폐지돼야 한다"는 한은의 주장과 "방만한 예산운용을 초래할 수 있어 어떤 형태로든 통제가 필요하다"는 재경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한은은 1997년 은행감독권을 금융감독원에 빼앗겨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데다 그동안 한은법 개정이 번번이 무산됐던 점을 들어 이번에는 반드시 한은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재경부 역시 이라크전쟁, 국가신용등급 전망 하향, 카드채 문제 등으로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으나, 급박했던 상황이 안정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대국회 활동'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경제 위기상황에서 '밥그릇 싸움'에 매달린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 공식적인 대응은 자제하면서 의원들 상대의 물밑 로비전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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