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6일 세인트 루이스의 보잉사 직원들에게 한 연설에서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이상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는 해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라크 석유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행보가 본격 시작된 것이다.전쟁 승리를 선언한 지 채 하루도 안 돼 나온 그의 발언이 전후 복구비용은 물론, 이라크 석유산업에 대한 미국의 이권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석유 수출 금지를 골자로 13년간 계속돼 온 유엔의 금수조치가 풀려야만 의도대로 이라크 석유를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콧 매클레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라크가 세계 시장에서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도록 "가까운 미래에 유엔이 감독하는 제한적 금수조치(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를 종결하는 유엔 결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그러나 경제제재가 완전히 풀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지 4일 후인 1990년 8월 6일 발효된 경제제재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획득 재원을 고갈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특히 걸프전 종전 후인 91년 4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687호는 이라크가 무장해제를 완료했다는 유엔 무기사찰단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어떻게든 대량살상무기 보유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유엔 사찰이 중단되고, 지금까지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를 증명할 단서를 찾지 못한 상태여서 제재 해제 논의가 미국측 희망대로 순항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이라크전에 반대한 국가들이 전후 처리만큼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자존심까지 물려 있어 상황은 더욱 꼬여 있다.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즉각 "돈이 목적"이라며 "미국업체들만 이라크 석유산업의 열매를 갖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는 유엔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제재를 해제해도 석유 수출 대금을 누가 관리할지, 석유 수입국들은 누구와 수출입 계약을 맺어야 할지 분명치 않다는 형식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제재가 해제된다면 유엔은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관리하고 있는 석유 수출 대금을 이라크 정부에 넘겨줘야 하지만 현재는 이라크에 국제사회가 승인한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에 지급하고 있는 전쟁 피해 배상금 계속 지급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유엔은 90년 이라크의 침공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라크 석유 수출 대금의 25%를 떼어 쿠웨이트에 지급해 왔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 이라크 경제제재는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는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지 4일 후인 8월 6일 전격 단행됐다. 석유 수출 제한, 무기 수출입 금지, 금융 자산 및 해외투자 동결 등 포괄적이고 강제적인 내용이다.
걸프전 종전 후인 91년 4월 3일 유엔 안보리는 결의 687호를 통해 경제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조건으로 쿠웨이트 국경 인정 사거리 150㎞ 이상의 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파기 쿠웨이트 침공 전 부채 상환 및 피해 보상 쿠웨이트인 및 외국인 포로 등 수감자 귀환 석유 수출 대금으로 보상 재원 마련 등을 규정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무차별 금수 조치로 민간인의 피해와 고통이 극심하다는 국제 여론에 밀려 안보리는 95년 4월 14일 결의 986호를 통해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을 도입, 지금까지 실시해 오고 있다. 금수 조치의 골격은 유지하되 인도적 차원에서 6개월마다 20억 달러 한도로 식품과 의약품 등 필수품 구입에 필요한 만큼의 석유만을 수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른바 '똑똑이 규제(Smart Sanctions)'이다.
99년 12월 17일에는 결의 1284호를 통해 당시 유엔사찰위원회(UNSCOM)에 협력할 경우 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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