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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전소를 찾아서]2·끝>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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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전소를 찾아서]2·끝>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

입력
2003.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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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회현동 LG CNS 본사 프라임 타워. 각종 악기 케이스를 손에 든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2월 19일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진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가 새 둥지를 튼 곳이다. 벤처와 IT산업의 심장부인 서울 테헤란로 일대의 직장인들이 모여 결성, 커다란 화제를 모았던 이 오케스트라는 창단연주회 이후 참여자가 급속히 늘어나 테헤란로의 데이콤 빌딩에서 좀 더 넓은 프라임 타워의 지하와 9층 강당을 연습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명동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꿔야 할까요?" 단장 이준표(36·바이올린)씨가 너스레를 떤다. 사실 이름은 크게 상관이 없다.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는 엄밀히 말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영문 약자인 'TVO'는 무려 5개의 오케스트라를 묶어주는 이니셜이 됐다."악기 초보자를 위한 '델리카토'와 '피온스' 오케스트라가 있고, 중급자들은 '준 필하모닉'에서, 고급자들은 '하모니아'에서 활동합니다." 이 단장은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오케스트라 인큐베이팅'을 창단 연주회 이후 시도해봤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오케스트라 인큐베이팅은 아마추어들이 직장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할 수 있게 육성하는 역할이다. 현악기는 빠지고 관악기만으로 구성된 윈드(wind) 오케스트라인 '아름다운 윈드'까지 포함해 5개 단체의 이름 앞에 붙어있는 TVO라는 로고가 이들이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이날 연습하는 단체는 새로 생긴 윈드 오케스트라인 '아름다운 윈드'와 중급자가 모인 '준 필하모닉'이다. '아름다운 윈드'의 연습실인 9층 강당에 올라가니 30여 명의 단원들이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등을 꺼내고 있다. 다른 단체는 목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에 이곳에서 연습한다.

홈페이지(www.tvo.co.kr)에서 활동하는 온라인 회원이 700여 명, 이처럼 연습에 참여하는 회원은 300여 명이나 되는 큰 조직의 운영을 위해서 자금 등 운용을 담당하는 총무부서와 음악 부분을 총괄하는 음악감독도 따로 두었다. 예전에는 데이콤 심포니 오케스트라나 LG CNS 사내 오케스트라의 대표자가 부단장을 맡았지만 사내 오케스트라에서 확장된 지금은 각 오케스트라에 반장을 두고 부단장 제도는 없앴다.

참여자의 폭도 늘어났다.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받지 않지만 전공자를 단원으로 하지 않는다는 초기 방침을 바꿔 악기 전공자라도 프로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면 참여가 가능하다. 이 단장이 밝히는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연습에 참여하고 월 7만원의 회비를 내면 정회원 자격을 줍니다." 한 달에 3주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레슨을 받고, 1주는 합주연습을 하기 때문에 회비는 저렴한 셈이다. 현재 26명의 외부강사가 단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물론 20대 직장인부터 50대 대학교수까지 신청자는 계속 늘어나서 모두 다 받지는 못한다. 한 단원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귀한 비올라나 트럼본, 튜바 등을 지망하면 유리하다"고 귀띔한다.

현재 주축이 되는 단원들은 대림그룹의 '대림 심포니'와 주식회사 태영의 '태영 앙상블'에 LG CNS와 데이콤 사원들이다. 이 단장이 거쳐간 회사가 많다. 대학에서 건축디자인을 전공한 이 단장은 대림에서 건축디자인을 했고, 데이콤에서는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다. 지금은 재정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팔방미인이다. "고교 때 꿈이 작곡을 전공한 후 지휘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작곡콩쿠르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제 꿈을 다시 펼쳐봅니다."

오후 9시께 바깥에는 한·일 축구 관전이 한창이건만 이곳에는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을 연습하는 단원들의 열의가 넘친다. 잠시 쉬는 시간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꿈은 어떤 것일까. 트럼본을 연주하던 송성준(32·삼성 SDS)씨가 처음 왔다며 단원들에게 자기 소개를 한다. "적지에 들어와서 연습을 하게 되었다"고 농담을 던지는 송씨는 1991년부터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트럼본을 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5년 동안 악기를 놓았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다시 손에 잡았다. 송씨는 "3∼4개월 후면 여기서 좋은 앙상블이 나올 것"이라며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권윤성(28·LG CNS)씨의 꿈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왔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Kv.622'의 2악장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것이다. 여성적인 플루트보다 클라리넷의 매력에 더 끌렸다고 한다. 권씨는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에 짬을 내서 연습하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라며 아쉬워한다. 직장 동료인 플루트의 임화경(26)씨는 연주를 "자기 충전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악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 단장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데이콤 때 30명 모으기가 힘들던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연습실이나 재정 문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가 아쉬워하는 것은 기업들의 지원이다. 한 단원은 "아마추어를 무시하면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이 죽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추어들이 자라서 미래의 클래식 관객이 되는데 그걸 모른다는 항변이다. 문득 "음악가들이 음악회에서 청중을 내몰고 있다"는 한 성악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이들의 꿈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아마추어의 콘서바토리(음악학교)를 만드는 겁니다. 여러 기업에도 오케스트라가 생기고 술자리 위주의 직장문화도 변하게 되겠죠." 강당에는 다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우아하게 울려 퍼진다.

/글·사진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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