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자유로운 동작으로 여유 있게 하늘을 날며 나발을 부는 천인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가 부는 나발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고, 옷자락을 날리는 바람결이 내 곁에 불어오는 듯 생생하다.신비로운 바람결에 고구려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가뿐하게 하늘을 나는 '나발 부는 천인'은 영원한 자유를 찾아 비상(飛翔)하고 싶은 옛 사람들의 꿈이 담겨 있는 듯하다.
'나발 부는 천인'은 고구려 무용총 천장에 그려져 있다. 천인이 불고 있는 나발은 쇠붙이나 나무, 동물의 뿔로 만든 긴 대롱(管)에 입김을 불어 넣어 연주하는 간단한 구조다. 그래서 나발에서 나는 소리도 '한 음' 뿐이어서 멋있는 선율을 연주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숨을 길게 불어 넣어 '뚜―뚜뚜' 하는 식으로 소리를 끊어내면서 소리의 길이에 변화를 주어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고대사회에서 나발소리는 일종의 '신호체계'로 인식됐다. 공동체 사람들이 모두 같이 알아야 할 일이 있을 때 나발을 불어 알리는 '의사소통'의 문화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일' 중에는 전쟁 같은 긴급한 일도 있었고 함께 모여 일하러 가자는 공지사항이나, '원님 덕에 나발 분다', 또는 '사또 지나간 뒤 나발 분다'는 속담처럼 관리들의 공식 행차 소식도 있었다. 나라의 큰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의 행사장 도착을 큰 나발을 불어 알리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나발 부는 천인'을 다시 보면 근사한 음악적 이미지 대신 지금 이곳에 무슨 일이 생겼기에 천인은 나발을 불며 허공을 날고 있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참은 날', '얽매인 삶의 인연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 이 그림을 바라보면 '지금부터 내 연주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세상으로 안내해드리는 소리입니다' 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림 속의 천인은 천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이런 말을 해 왔을 것이고, 그 중에 몇 사람 천인의 이런 소리에 귀 기울인 사람은 꿈같은 일탈의 자유를 맛보았을 것이다.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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