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사진) 교수가 건강한 삶을 만들기 위한 사회 제도의 문제와 우리 의료제도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칼럼을 연재한다. 김 교수는 사회보장연구센터 소장, 보건복지부장관 자문관 등을 역임했으며 서울대 의대 교수를 거쳐 현재 보건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나마 이라크 전쟁이 끝나가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전쟁은 참담하고 슬프다. 잠깐의 뉴스 화면에도 울컥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어찌 나 뿐이랴.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부모의 모습에서 50년 전 이 땅이 되살아난다.
어떤 명분이든 전쟁은 반생명적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벌써 민간인이 1,200명 이상 죽었고 5,000명이 넘게 다쳤다. 어디 그뿐인가. 유엔인구기금은 하루 2,000명이 넘는 산모들이 원시적인 상태에서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했지만, 막상 이라크 국민이 대량살상을 당한 것이다.
상식을 믿지 말라. 전쟁은 군인의 몫일지언정 그 피해는 군인의 것이 아니다. 과거에 비하면 현대에서 민간인의 전쟁피해가 더 심하다. 유니세프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전쟁 때는 전체 사망자의 34%가 민간인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는 90% 이상이 민간인이다. 이제 전쟁은 사실상 민간인을 대상으로 벌어진다. 전쟁이 끝나도 전쟁피해는 계속된다. 아니 오히려 전쟁 이후가 더 문제다. 경제의 피폐, 사회기반시설의 붕괴, 영양결핍, 의료자원 부족 등 평범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악조건은 수십년간 지속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전쟁 이후 한 세대도 넘게 우리사회가 겪은 고단한 현실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히 그 고통을 짐작하리라. 이라크에서도 1990년 걸프전 이후에 다섯 살이 안 되는 애들의 사망률이 전쟁 전에 비하여 3배나 늘었다던가.
심지어 전쟁 승리자조차 고통을 피할 수 없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군인의 상당수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승리한 전쟁은 아니지만, 베트남 전에 참여했던 미국 군인도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고통스럽다. 미국 질병통제국의 장기조사 결과 베트남 참전 미군은 다른 군인보다 사망률이 17%나 더 높았다고 한다.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아직도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도 다를 바 없다.
결국 전쟁의 고통은 군인도 민간인도, 그리고 승패자도 가리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한 순간에 그리고 또 수십년 동안 계속해서 앗아간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어떤 소박한 희망도 전쟁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래서 어떤 경우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도 생명의 고귀함을 앞설 수는 없다. 국제정치와 국가이익의 냉혹함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전쟁을 부추기는 반생명의 축을 무너뜨려야 한다.
/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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