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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32>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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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32> 이철

입력
200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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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세력끼리의 연대 등 새로운 정치판도가 필요한 시점이에요."동면(冬眠)에 들어가 있던 이 철(李哲·55) 전 의원이 마침내 기지개를 켰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오랜 기간 정치적 코드를 맞춰온 동지다. 중요한 갈림길에서 대세보다는 원칙과 명분을 택해 노 대통령과 함께 늘 변방으로 밀려났고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1990년 YS가 3당 합당으로 여권에 합류하자 이를 거부하고 '꼬마 민주당'으로 남았을 때도 그랬고, 95년 DJ가 민주당을 떠나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도 따라가지 않고 함께 '통추'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소위 '잘 나간다'는 통추 인맥으로 분류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최근 정부측 권유로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 내정됐다. 하지만 그는 일부에서 비판이 일자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렸다. "큰일이건 작은일이건 명예롭게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낙하산이니 뭐니 해 모욕감이 들었다"고 한다. 자리보다는 명예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총선 출마 의사를 묻자 "새 정치판도를 만들기 위해 성북구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당적이 없는 그는 "정당 개편 과정을 지켜보면서 개혁적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개혁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전 의원은 어찌 보면 막차를 탄 사람 중에서도 꼴찌로 '노무현 사단'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해 대선 전날인 12월18일까지만 해도 국민통합21 소속이었다. 선거 전날 정몽준 대표가 돌연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한데 대해 번복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음날 탈당했다.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국민통합21의 협상창구를 맡았던 그는 "협상과정에서 노 후보가 단일후보가 돼야 한다는 의사를 노 후보측에 전달하기도 했다"면서 "정몽준 캠프에 합류는 했으나 얼마 안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의 협상 파트너였던, 통추 출신의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과는 막역한 사이로 74년 민청학련 사건때 함께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가 노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걸어오면서도 갈렸던 때가 지난 대선만은 아니다. 97년 대선 직전 통추가 지역구도 극복이냐, 3김 청산이냐를 놓고 갈렸을 때 그는 후자를 택해 한나라당에 들어갔다. 반면 노 대통령을 비롯, 민주당 신주류에 속하는 김원기 고문, 유 수석 등은 전자를 택해 DJ진영에 합류했다. 12,13,14대를 내리 당선된 뒤 96년 15대 총선 이후 고배를 마셔온 그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선택이 궁금해진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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