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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장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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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장미문화

입력
200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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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혈통은 복잡하다. 고대 벽화를 보면 장미는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반구 온대·아한대 지역이 원산지인 장미는 로마시대 이후 귀족과 부유층의 연회석을 아름답게 장식해 왔다. 19세기부터는 신품종 개발의 붐이 일어 지금은 1만5,000종을 헤아린다. 새로운 품종개발로 자태의 신비로움과 색채의 우아함을 더해 온 장미는 가히 '꽃 중의 꽃'으로 불릴 만하다. 우리나라에 지천으로 피는 찔레꽃과 해당화도 장미과에 속한다. 그러고 보면 소박한 하얀 꽃에 숨어 매혹적 향기를 뿜는 찔레꽃이나, 명사십리를 밝혀주는 해당화에서는 장미의 기품이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이 2월14일의 발렌타인 데이를 서양식으로 기념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해도 흉 될 것이 없는 날로 알려진 이 날, 많은 한국의 젊은 여성은 초콜릿에 수줍은 사랑을 실어 전한다. 18세기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초콜릿 선물을 애용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풍습이지만, 초콜릿 제조업자의 상업적 계산이 부추긴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는 초콜릿과 함께 장미가 많이 애용된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날 사용될 장미가 남미 가난한 나라에서 대규모로 수입되기도 한다.

■ 오는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이날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남녀가 서로 장미와 책을 주고받는 '상트 호르디의 날' 전통에서 유래했다. 1926년 이래 지켜진 이 풍습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책의 날로 다시 태어났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책과 장미의 축제'를 열고 있다. 책의 날을 앞둔 일요일인 20일 전국 10개 서점에서 연인, 친구, 가족 단위 고객에게 책과 장미를 선물한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지성의 상징인 책을, 서점들이 사랑의 상징인 장미를 마련하는 것이다.

■ 국내 발렌타인 데이에 장미는 빠지고 초콜릿만 선물로 행세하는 것은 유감이다. 이는 국내 초콜릿 제조업자들이 장미재배 농민보다 물건을 팔기 위해 더욱 효과적인 조직력, 기획력을 발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꽃은 제외시키고 음식만 주고받는 것은 그리 교양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책의 날에는 장미와 책이 함께 선물 됨으로써, 낭만과 교양과 기쁨이 보기 좋게 어우러졌으면 한다. 소박한 찔레꽃과 해당화의 나라에 도도하게 밀려오는 세련미 넘치는 장미문화를 기왕이면 제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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