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 2001년 3월 전세계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세계 최대불상이자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자 공분에 떨었다.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우상이라는 이유로 파괴를 강행한 탈레반에 대해 국제사회는 무자비하고 혐오스러운 폭력행위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미국 정부도 "석불 파괴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며 국무부를 통한 비난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 석불 파괴로 탈레반 정권의 야만성은 국제사회에 깊숙이 각인됐다.이라크의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이 시민들에게 무차별 약탈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미안 석불이 떠올랐다. 당시 안보리 성명까지 채택하며 야만적 행동을 앞장서 규탄했던 미국이 왜 이번에는 약탈을 수수방관했을까 하는 의문에서다. 두 문화유산의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7,000년 이상 된, 인류 문명의 보고가 수두룩한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은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인류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박물관 약탈행위에 대해 미군에 책임을 물을 근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무장한 미군 4∼5명만 있었어도 약탈을 막을 수 있었다는 관계자의 울부짖음을 되새기면 미군이 약탈을 못 막은 게 아니라 안 막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떠나지 않는다. 박물관 경비원은 수 차례의 보호요청을 미군이 묵살했다고 증언했다. 미국 CNN 방송은 미국이 박물관을 지키겠다는 전쟁 전 약속을 어겼다고 보도했다. 고고학계는 전쟁 전부터 박물관 보호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미국이 이를 저버렸다고 성토하고 있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미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박물관 약탈사태를 방관했다면 자신들이 야만적이라고 비난했던 탈레반보다 더 야만적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황유석 국제부 기자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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