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라크 전쟁/"누구도 믿을수 없다" 모두에게 등진 도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라크 전쟁/"누구도 믿을수 없다" 모두에게 등진 도시

입력
2003.04.15 00:00
0 0

바닥을 보이는 식량, 날로 치솟는 화폐단위, 총격전이 예사인 생존 현장…. 함락 후 폐허가 가져다 준 바그다드 시민들의 '충격과 공포'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미군은 13일 바그다드 점령 후 처음으로 외국 기자들이 묵고 있는 팔레스타인 호텔 주변에 철조망 울타리를 설치했다. 식량 등 생필품 부족에다 방송 중단으로 모든 정보로부터 고립된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호텔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질서유지에 한계를 느낀 때문이다.

이날도 시내 곳곳에서는 치열한 교전이 이어졌다. 하루종일 '따다닥' 하는 소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중간중간 야포 소리와 대규모 폭격으로 짐작되는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시내 곳곳에서 피어 오르는 검은 연기는 이미 일상이 됐다. 기자가 머물고 있는 호텔 앞마당까지 핵 폭탄의 낙진처럼 하얀 재들이 날아 들었다.

시내 치안은 전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군이 간간히 순찰을 도는 대로변과 달리 좁은 골목들로 이어진 일반 거주 지역의 상황은 한층 살벌했다. 약탈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민들은 동네마다 자체 방어조직을 만들어 총으로 무장한 채 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 골목마다 모래주머니, 시멘트 덩어리, 가구 등으로 급조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고 누구든 경고를 무시하고 접근하는 사람에겐 총을 겨눴다.

누가 언제 강도로 돌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외국인은 물론, 이라크인들도 낯선 지역 통행은 목숨을 건 모험이다. 무차별 약탈을 피해 문을 닫았다가 12일부터 개장 준비에 나선 한 모텔의 경비는 "당분간 치안이 확보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대방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쏘는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날 둘러 본 팔레스타인 호텔 근처 부유층 거주지역엔 집집마다 피난을 떠난 주인이 고용한 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집을 지키고 있었다. 경비가 없는 지역의 저택은 여지없이 약탈을 당했다. 약탈 행위가 다소 수그러드는 분위기이지만 이는 치안이 확보되어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약탈할 만한 물건이 동이 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수르 대학에도 교수와 교직원들이 나와 소총을 든 채 경비를 서고 있었다. 며칠 전 이 대학에 포크레인과 트럭을 동원한 폭도가 교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한 일이 있어 자체 경비대를 조직했다는 설명이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기자들의 집합소인 팔레스타인 호텔은 13일부터 이라크인들의 유일한 민원 창구가 됐다. 이날 팔레스타인 호텔 앞에서는 개전 후 처음으로 이슬람 정부 수립과 선 평화정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약 200여 명의 시위대들은 "후세인 정권 종식을 환영하지만 미국의 지배도 원치 않는다"며 이라크인이 주도하는 새 정권 출범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아흐마드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의 새 정부 참여도 강력히 반대했다. 시위대 일각에서는 "석유 이권을 약속한 미국이 후세인과 밀약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음모설까지 제기했다.

호텔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의약품이 고갈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이는 장면도 목격됐다. "미국은 조속히 의약품과 생필품을 공급하라"고 요구하는 이들 중 일부는 즉석에서 미군 위생병의 응급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동안 민간인의 약탈행위를 수수방관하던 미군도 부분적으로 치안회복에 나서고 있다. 미 해병대 병사들은 티그리스강을 건너는 타무제 다리 검문소에서 통행 차량을 검문하면서 오디오 냉장고 의자 등 약탈품들을 압수해 길가에 쌓아 놓았다. 오후 2시께 호텔 주변에서 만난 전직 바그다드 경찰은 "14일부터 미군과 공동으로 적극적인 치안확보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며 "야간 통행금지를 검토하고 있지만 상당 기간 무정부 상태는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식 특파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