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시리아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고 나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다음 타깃으로 시리아를 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4일 이라크 고위 지도부 망명 비호와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 "시리아에 대한 경제, 외교적 제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11일과 13일 잇따라 시리아에 후세인 대통령과 군부 지도자들에게 망명 은신처를 제공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연일 "이라크 지도자들이 시리아로 도주했다" 등의 말을 쏟아내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이 같은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미국이 시리아를 비난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시리아가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다는 것이지만 일부에서는 좀 더 심각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 불거져 나온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 점을 눈 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13일 "우리는 시리아에 화학무기가 있다고 믿는다"며 이라크 지원 외에 다른 이유를 끄집어낸 것도 그냥 지나치기 힘든 대목이다. 영국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는 13일 "미국이 대테러 전쟁의 다음 목표로 헤즈볼라를 지목했다"며 "이는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군사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 거점을 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로 시리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은 현재로서는 하나의 가능성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전후 이라크 복구에 상당 기간 힘을 쏟아야 하고 북한 핵 문제도 본격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전쟁을 강행하면서 국제 사회의 심각한 비판에 직면한 만큼 갈등을 치유하는 것도 급선무다. 명분 없는 이번 전쟁이 공식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시리아를 공개적으로 짓누르는 것은 또 하나의 전쟁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기는 무리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시리아 정부로부터 많은 정보를 제공받고 있어 시리아를 적으로 돌릴 경우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모든 선택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시리아 길들이기에 주력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이라크 전쟁의 승리로 얻고자 하는 '중동 질서의 미국적 재편' 구도에서 시리아, 넓게는 중동 어느 국가라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시리아는 단지 우리와 협력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시리아가 협력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현재로선 시리아를 공격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의 시리아 압박은 또한 힘들게 얻은 이라크전의 전과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지목한 악의 축 중 나머지 북한, 이란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들도 이번 전쟁 및 시리아에 대한 경고에서 적절한 교훈을 얻어 미국에 맞서려고 시도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만 향후 시리아의 대응에 따라 1,2년 후 미국이 시리아와의 일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시리아 압박이 미래의 전쟁을 대비해 차근차근 명분을 축적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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