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투자펀드인 크레스트 시큐리티스의 SK㈜ 주식매집 사태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재계는 우선 SK그룹이 계열사ㆍ오너일가ㆍ자사주 지분을 합쳐 총 32%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12.39%를 가진 크레스트에게 경영권을 위협 받는 것은 출자제한때문이라고주장한다. 실제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우 순자산의 25%를 초과하는 출자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SK측 우호지분 가운데 의결권이 있는 것은 10.38%에 불과하다. 전경련 관계자는 “재벌규제에발목이 잡혀 대주주의 우호지분율이 낮아지면서 해외자본의 M&A 위협을 받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시민단체 등은 SK㈜사태는 재벌규제 때문이 아니라, 전근대적 재벌체제의 산물이라고 반박한다. 총수가 몇 %도 안되는 지분으로 계열사를 거느리는 선단식 소유구조 때문에 적대적 M&A의 표적이 되고,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기업가치보다 주가가 더 하락해 M&A 시도를 자초했다는 것.
양측 시각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면서, SK㈜사태는 앞으로 재벌개혁의 핫이슈로 부각할 전망이다.
재계는 이번 사태를 기화로 공정위가 예외축소를 추진중인 출자제한제에대해 예외를 추가 확대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는 만큼 소송으로 인한 주가하락과 M&A 위험방어를 위해 해외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적대적 M&A에 한해 허용하고 있는 금융회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공정위가 다시 금지시키려는 것과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 추진도 제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규제완화를 주장하며 공정위와 대립해온 재경부의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M&A가 들어온다면, 국민정서상 용납 되겠는가”라며 “이번 사태로 공정위 주장은 한풀 꺾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재벌개혁 가속화를 위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강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규제를 완화, 재벌이 문어발식 확장에 다시 악용한다면 한국 대외신인도는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권영준 경실련 정책위원장도 “M&A 위험이 투명경영 압력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측면이 있는데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그 위험을 줄이는 것은 그동안의 재벌개혁 성과마저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크레스트의 모회사인 소버린이 참여연대를 업고 한국의 우량기업 적대적 M&A를 시도한다'는 재계의 비난과 관련, "근거도 없을 뿐더라, 재벌개혁을 무산시키려는 의도"아고 반박했다. 장 교수는 "설령 외국인이 M&A를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를 국부유출이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라며 "공장을 다 뜯어가는 것도 아니고 아예 문을 닫게 하는 것도 아니며 기업을 더 좋게 만들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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