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고 나니 비가 내렸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이즈음 이곳 저곳에 심은 씨앗이나 나무나 풀의 모종은 단비를 흠뻑 받고 뿌리를 잘 내릴것입니다. 사실 식물은 물이 없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물은 식물체를 구성하는 성분임은 물론 양분의 이동, 심지어 양분을 만드는 체내의화학반응에도 필요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선 사람과 같습니다.씨앗을 보면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말라있던 씨앗에 물이공급되면 그때부터 생명체의 성장이 시작됩니다. 물 분자가 씨앗의 껍질을통과해 생명을 깨우는 것이죠. 씨앗 내부 물의 양은 보통 8% 정도인데 12% 정도가 되면 발아해 싹이 내밀고 올라옵니다. 공기 중에는 씨앗이 죽지않고 호흡할 수 있을 정도의 물이 있으므로 씨앗은 숨 죽이며 새 봄을 기다려왔지요.
씨앗마다 수명이 다릅니다. 오래 묵은 씨앗이 발아하지 못하는 이유는 습기가 많아지는 등 부적절한 조건으로 저장했던 에너지를 모두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껍질이 딱딱하거나 건조하고 낮은 온도에 보관한 씨앗의수명은 길어집니다.
제가 일하는 광릉 숲에는 아름다운 목조건물이 완성돼 가고 있습니다. 식물연구의 기초적인 연구자료가 되도록 죽은 식물을 완전히 말려 시간적 공간적 기록을 해두는 ‘생물표본관’, 살아 있는 씨앗 형태로 아주 오랫동안 보존해 필요할 때 언제나 싹 틔울 수 있도록 식물자원을 모으는 ‘종자은행’이 들어설 곳이죠.
그런데 재미난 것은 우리가 씨앗을 심었을 때 위 아래 구별하지 않고 그냥뿌렸는데 어떻게 싹이 자라고, 줄기는 위로 뿌리는 아래로 자라는 것일까요? 말하자면 위아래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요? 줄기는 위로 자라 빨리 땅위로 올라가야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뿌리는 땅 아래로 물을 찾아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씨앗은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요.
바로 중력때문이지요. 자라기 시작한 식물의 위치를 바꿔도 이내 뿌리와줄기는 각기 가야 할 방향을 바로잡고 찾아가는데 이를 ‘굴지성(屈地性)’이라고 합니다.(예전에 생물 시간에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줄기가 땅 위로 일단 올라가면 햇빛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깜깜한 콩나물 시루에서도 노란 콩나물이 위로 자라 올라오는 모습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더욱 쉽겠지요.
이 봄에 나무나 풀의 씨앗을 심었다면 이제는 자라 올라오는 새싹과 부지런한 뿌리의 모습을 들여다보십시오. 자연의 모습을 엿본다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더라도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얻을 수 있는 고운 초록색 기쁨이 될것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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