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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현장]'바이러스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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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현장]'바이러스 공포'

입력
2003.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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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차대전의 양상이다.”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대만의 루 수렌(呂秀蓮) 대만 부통령의 말이다. 그는 “물질적 안락을 추구하는 현대인에 대한 신의 징벌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이례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일반 폐렴보다도 높지 않은 사스의 위험성(삼성서울병원 송재훈 감염내과과장)에 비추어 과도한 불안일 수 있으나 루 부통령의 발언은 적어도 전염병 박멸에 대한 인류의 기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폴로가 달에 착륙하던 1969년 미국의 전염병 관리책임자인 공중위생국 국장은 “전염병의 시대는 갔다”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의학전문가들은 ‘21세기는 신종 바이러스(New Virus)와의 전쟁시대’로 말할 만큼 신종 바이러스가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공포로 대두되고 있다.

● 세계를 공포로 몰고 있는 사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일 사스 유행지역인 중국 광둥성, 홍콩에 대한 여행제한조치를 내렸다. WHO 역사상 여행제한을 공식 권고하기도 처음이지만 세계 각국의 환자통계를 취합, 환자발생 일보를 내는 조치도 유례없는 일이다.

세계 각국이 저마다 사스유행지역에 대한 여행제한조치를 내리고 덩달아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이라크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예상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립보건원이나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환자의 90%이상이 단순 감기정도에 그치며 치사율도 3~4%로 일반폐렴(평균 5~8%)보다 높지 않다고 평가한다.

송재훈 과장은 “잘못된 조치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이해할 수 없다”며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전문가인 나도 불안할 정도인데 일반인은 오죽하겠느냐”고 말할 정도다.

그렇다면 WHO는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이종구 인천공항검역소장은 “임상학적으로 사스의 위험성은 다른 전염병에 비해 높지 않지만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사스는 원인균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잠정결론이 났지만 치료법이 개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고 전파경로조차도 오리무중이다. WHO의 과민대응은 ‘불확실성’때문이라는 것이다.

● 신종바이러스는 계속 출현한다

인간에게 강력한 독성을 가진 신종바이러스는 앞으로 계속 출현하게 되리란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원래 코로나바이러스는 3개군 13종으로 개 돼지 조류는 물론 인간에게도 단순감기만 유발해왔다.

그러나 최근 사스환자에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변종이다. 홍콩의 일부환자에게는 닭, 돼지 등 동물에게 나타나는 파라믹소바이러스까지 검출돼 두 바이러스가 독성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사스처럼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전이돼 강력한 독성을 나타내는 바이러스 등이 1990년대부터 계속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 바이러스. 중앙아프리카의 녹색원숭이로부터 사람에게 전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광우병에 걸린 소로부터 전염돼 인간의 뇌 기능을 마비시키는 크로이츠펠트 야곱병(1996년), 미국, 일본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O-157 대장균(1996년), 홍콩조류독감(97~98년) 등이 있다.

또 1997년 말레이시아의 양돈업자들 사이에 처음 번지기 니파바이러스는 애초 숙주인 돼지에서 사람에게 옮겨져 적어도 100명이상이 숨졌다. 감염되면 2~5일내 피를 뿜고 죽는 치명적 독성의 에볼라바이러스는 숙주조차 확인되지 않은 그야말로 ‘괴질’이다.

연세대 미생물학교실의 이원영교수는 “동물에 적응된 바이러스가 어느 순간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전이되면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치명적이고 심한 증상을 나타낼 수 밖에 없다”며 “고립적이던 과거와 달리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지구촌화한 오늘날 신종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출현과 세계적인 확산은 계속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변신을 거듭하는 신종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의학계에는 동화‘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효과’로 이를 설명한다.러닝머신(바이러스)위에서 인간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듯 바이러스의 진화에 맞서 인간이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미국의 질병관리센터에서 2년여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했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과 허영주사무관(의사)은 “진화하는 바이러스와 신약개발 등 인간의 과학기술발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속도전쟁은 더욱 격화할 것”이라면서“미국이 세계 각국에 전염병이 퍼질 때 마다 조사관을 보내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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