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등 지음 화남 발행·1만2,000원
'그건 하늘에/ 미사일과 폭탄을 쏘아올려/ 아이들이 마음에/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신을 생각하게 한다.// 그건 독재자들에게 긴 연설을 하도록 만들고/ 장군들에게 훈장을 주고/ 시인들에게 소재를 제공한다'
('전쟁은 힘들어'에서)
전쟁이 그러하다. 이라크 시인 둔야 미카일은 알고 있다. 전쟁이란 '앰뷸런스를 사방으로 보내고/ 시체들을 공중에 흔들고/ 어머니들의 눈에서 비를 내리게 하고/ 잔해들 아래서 많은 것들을 삽으로 퍼낸다'는 것을. 지금 전쟁을 겪고 있는 사막의 나라를 고국으로 둔 시인의 목소리다.
'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출간된 반전·평화문학 작품집이다. 고은 신경림 김지하 도종환 안도현씨 등 시인과 남정현 김영현 정도상 오수연씨 등 소설가, 염무웅 도정일씨 등 평론가가 필자로 참가했다. 한국 문인 122명이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쓴 시와 소설, 산문을 모았으며, 이라크 시인 5명이 보내온 반전시를 함께 묶었다.
한국일보에 연재된 '평화의 시' 시리즈 등 시인 63명의 시 81편에는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고은 시인은 '지금 사막은 잠들지 못한다/ 지금 메소포타미아의 아이와 어머니는/ 외진 울음도 나누지 못하고 죽어간다// 우리들이 세운 기둥마다 새겼던 말/ 정의와 자유/ 해방/ 세계 평화/ 기어이 찾아야 할 그 말들을 도둑맞았다'('나의 편지'에서)고 탄식한다.
곽재구 시인은 조간신문에 실린 피투성이 이라크 소녀의 사진을 보고 통곡하며 전쟁 반대를 외친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치욕/ 하나뿐인 지구를 능멸하는 광기/ 스커드 미사일의 파편에 실려/ 꿈도 없는 길을 두 발 없이 살아남아/ 어디로 걸어가야 할 지 끝내 알 수 없는 소녀야// 오, 전쟁은 NO!/ 저 추악한 자본의 광기도 NO!'('어린 이라크 소녀에게'에서)
박노해 시인이 이라크에서 400㎞ 떨어진 요르단 암만에서 보내온 현장 통신은 전쟁의 현실이 인간의 가슴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히는지를 고발한다. "살람 알레이꿈(당신에게 평화를." 전쟁터에서 아랍인들은 이렇게 인사한다.
그들의 순한 눈동자와 마주하면서 박씨는 '모든 인간을 미치게 하는' 전쟁을 소리 높여 반대한다. "시내 모스크나 광장에서 마주친 이라크인들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인들은 낯선 동양인인 저와 눈이 마주치면 따뜻한 얼굴로 다가와 살람 알레이꿈,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에게 평화를, 이라는 인사말이 이렇게 사무치게 느껴진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처절한 목소리는 이라크인들이 부르는 슬픈 노래일 것이다. 압둘 와합 알 바야티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두고 침묵하는 신을 향해 부르짖는다. '우리는 죽어간다./ 우리는 침묵 속에 죽어간다./ 왜 우리는 울지 못하나./ 불 위를/가시 덤불 위를/ 걸어갔다./ 우리 백성들이 걸어갔다./ 우리가 왜, 주여!'('우리는 왜 유랑지에 있나?'에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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