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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입력
200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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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글·취츄바이 엮음·루쉰읽기모임 옮김·케이시 발행·1만5,000원20세기 중국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문학가로 꼽히는 루쉰(魯迅·1881∼1936·사진). 19세기 말 격변기에 태어난 그는 봉건질서의 몰락과 근대의 물결을 겪으면서도 전근대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늙은' 중국의 허위와 모순, 껍데기를 독하게 질타했다.

루쉰 산문집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좌파 비평가 취츄바이(瞿秋白·1899∼1935)가 엮은 '루쉰잡감선집'(1933)에서 73편을 골라 옮긴 것이다. '잡감'(雜感)은 자유로운 형식의 사회·문화 비평을 가리키는 것으로, 루쉰의 저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치열한 비판정신으로 중국 국민성을 해부한 그의 날카로운 메스는 '아큐정전'을 비롯한 그의 소설과 시 산문 번역 등 많은 글에서 확인되는데, 잡감에서 특히 강렬하게 빛난다.

제목은 그 중 '페어플레이는 응당 천천히 행해져야 한다'에서 뽑은 것으로, '페어'하지 않은 현실에서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것은 곧 철저한 비판과 시비 없이 과거(전통)를 망각하고 용서하자는 것과 다름없다는 내용이다. 루쉰은 자신의 당대 현실에서 여론을 주도하던 보수적 지식인들을 일러 '정인군자'(正人君子),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바른생활 맨' 쯤 된다, 라고 비아냥거리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페어플레이론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페어플레이…'의 글들은 1920∼30년대 중국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8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 갖다 대도 여전히 유용한 거울이다. 오늘의 한국도 전근대적 요소를 완전히 떨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중하 연세대 교수, 공상철 협성대 교수 등 중국 현대문학 전공자 10여 명으로 이뤄진 루쉰읽기모임이 번역했다. 이들은 1999년부터 매주 한 차례 모여 루쉰을 읽고 토론해왔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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