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쓰키 아키라 지음·박선무 옮김 소소 발행·8,000원우리 국민 사망 원인 1위는 무얼까. 교통사고? 천만에, 암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1년 인구 10만 명 당 암으로 숨진 사람은 123.5명이다. 교통사고(23.8명) 사망자의 6배, 사망률 2위인 뇌혈관 질환(73.8명)의 2배에 가깝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4분의 1이 암으로 목숨을 잃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국가가 체계적으로 암을 관리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보건복지부는 국가암관리위원회를 설치, 5년마다 암 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료와 통계 수집·분석은 물론 암 조기 발견 검진 사업을 실시하고 말기 암 환자 전문 기관 육성 등 환자 관리 사업도 마련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통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국가가 암 환자의 아픔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암은 알려진 어떤 병보다도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질환이다. 다행히 조기 발견할 경우 생존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도 일부 암은 정기 검진으로 확인이 매우 어렵다. 고통을 느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이다. 말 그대로 어느날 갑자기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의 정신적인 충격은 또 오죽하겠는가.
이 책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42세의 일본 내과 의사가 쓴 병상 일기와 단상을 모은 것이다. 오카야마(岡山)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2년 여 벽지 의료 활동을 거친 뒤 1993년부터 기타(北)의사회 병원에서 소화기 내과 진료를 맡아 보던 저자는 입원 중 '폐암 의사의 홈페이지'(www2.inter-pro.ne.jp/∼ina)를 만들어 글을 올렸다. 책은 2002년 3월11일 뒤로 '업데이트'가 중지된 홈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묶은 것이다.
저자는 폐암 선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불행히도 저처럼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분, 당신에게도 아직은 행복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죽음을 준비할 특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을 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암은 고통스러운 병이기는 하지만, 그 대신 가까운 사람과 함께 병과 싸우고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특권을 신이 내려준 것인지도 모릅니다.'(38쪽)
2001년 1월 22일 처음 폐암 진단을 받고 며칠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외래 진료를 하면서 그는 '마치 드라마 주인공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일주일 후 입원한 병원에는 자신이 소개해서 먼저 그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는 암 환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그는 "오늘부터 나도 암환자입니다"고 인사했다. 2001년 2월 9일 일기는 딱 한 줄이다. '외박. 영정에 쓸 사진을 찍다.'
진료 과정과 그 가운데 든 여러 생각, 가족에 대한 애정, 암 환자 일반에 대한 단상, 의료 제도의 문제점 등이 2001년 11월 26일을 마지막으로 한 짧은 일기와 에세이의 형태로 섞여 있다. 지은이는 이로부터 얼마 후 사망했다. 암 환자를 문병할 때 나누면 좋은 이야기, 귀가 얇아진 환자나 가족이 가짜 약 선전에 속지 말 것 등 암 환자와 주변 사람이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도 여럿이다. 무엇보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암 환자의 하루하루가 감정의 과잉 없이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읽을 값어치가 있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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