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27일 잠실체육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모습을 보며 조재희(趙在喜·44) 청와대 정책관리비서관은 하루 두갑씩 태우던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정책으로) 도우려면 머리가 맑아야 하기 때문"이었다.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던 때이니 좀 엉뚱한 생각이었다. 당시 고려대 연구교수였던 그는 초청 받지도 않은 체육관의 한 구석에서 학계 선후배들을 꼽기 시작했다. 1989년 강사노조 초대 위원장으로, 당시 '청문회 스타' 노 의원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며 첫 연을 맺었지만 이후 그다지 내세울 만한 인연은 없다는 그가 왜 요청도 받기 전에 '노무현 돕기'를 마음 먹었을까.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역사(발전)"라는 말을 거듭했다. 노 대통령 당선의 역사적 당위성과 필연성을 오래 전부터, 또 변함 없이 확신했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는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을 탄 적도 없고, 인명록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얼마 후 김병준(청와대 정부혁신·지방분권 위원장) 교수와 민주당 정세균 의원에게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왔는데 대통령이 두 사람에게 따로 부탁한 것이 한 군데로 모인 것이었다." 그가 노 대통령 곁에 가게 된 과정을 들은 후 기자는 새삼 몸을 곧추세웠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 대선기획단 자문교수단 간사, 선대위 국가비전21위원회 총괄 간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분과 전문위원, 인수위 국정과제 태스크포스 총괄부팀장으로 이어진 그의 이력이 다시 보였다. 모두 대통령의 비전과 정책을 구상하고, 거기에 철학적 토대(뼈), 구체적 내용(살), 실천 방법론(혼)을 불어넣는 작업 전반을 조정하는 자리였다. 국정과제 위원회와 태스크포스를 관장하는 청와대 정책관리비서관에도 그 외에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지난해에는 대통령과 학계를 잇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대통령 과외'도 그의 주임무. 그는 "대통령도 '이길 방법은 토론 밖에 없다'고 할 만큼 열심이었다"면서 "속성과외였는데 마지막까지 한두 군데 미진했다"고 웃었다. 그는 또 지난해 11월 초 전국 1,300여명의 교수들이 지지선언을 한 후 버스 두 대에 나눠타고 격려 방문을 했을 때 대통령이 감격했던 모습을 소개했다. 그리곤 "이전 청와대에서는 학자들이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눈치를 봤지만 지금은 반대"라고 했다. 그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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