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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긴급 대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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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긴급 대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입력
2003.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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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함락과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로 이라크전이 종전(終戰) 단계에 접어들었다. 개전 초에는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군과 민병대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제2의 베트남전화 우려까지 제기됐지만 전세가 급반전, 사실상 전쟁의 마무리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 이라크전 종결이 앞으로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한국은 어떤 자세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들어보기위해 국제정치 분야 전문가 대담을 마련했다.

―이라크가 너무 쉽게 무너졌다는 느낌입니다.

문정인 교수= 바그다드가 함락됐지만 전쟁이 아직 끝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 제거와 집권 바트당 정권 붕괴라는 목표가 성취됐다고 보기 어렵고 잔존 세력의 저항 가능성도 큽니다.

물론 미군이 조기에 많은 전과를 올린 것은 분명합니다. 그 이유로는 20년 사이에 3번째 전쟁에 휘말린 이라크의 국력 탈진 현상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또 미국이 처음부터 이라크 전력을 높게 평가하는 정보를 흘려 예상되는 어려움을 과다하게 강조함으로써 미군의 선전(善戰)에 대한 찬사를 이끌어낸 것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홍현익 실장= 10여년 동안의 경제 제재 때문에 이라크가 국력과 군사력이 크게 축소된 상태인 반면 미국은 경제력도 커지고 군사력은 2배 이상 강화됐습니다. 미국측이 후세인의 사망설을 계속 흘려 이라크군의 사기가 저하됐다는 점도 관심을 둘 만합니다.

―연합군의 승리 이후 이라크는 어떻게 될까요.

홍 실장= 전쟁보다 더 어려운 것이 전후 처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3개월 군정 후 과도정부 수립―9개월 이내에 제헌의회 발족―2년 이내에 자치정부 수립이라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재건 동참을 요구하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과의 갈등이 커질 것입니다.

전리품인 석유 자원 배분 과정에서 프랑스와 러시아 등의 기득권을 보장하느냐 하는 문제도 풀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이라크 재건은 지난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문 교수= 이라크는 통일성이 없는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3개 집단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억지로 하나의 국가로 됐습니다. 후세인은 하나가 되기 어려운 이 세력들을 세속주의 정당인 바트당을 통해 묶어 놓았어요. 후세인 체제가 붕괴되면 각 집단의 분열은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미국은 아흐마드 찰라비를 중심으로 쿠르드족과 시아파를 연합한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지만 여기서 소외되는 집단은 어떻게 할지 첩첩산중입니다.

―전후 미국의 전략에 따라서 세계질서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의 소리도 많습니다.

문 교수=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노린 것은 중동 각국의 친미화입니다만 전망은 회의적입니다. 미국은 중동 국가들이 이번 전쟁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느냐에 따라 다른 대우를 해주겠다는 생각입니다.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으나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택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 대해 미국이 앞으로 압력을 가한다면 지도부는 친미, 민중은 반미라는 이원적 구도가 될 것입니다. 20년 독재에 부자 세습까지 노리고 있는 이집트나 왕정 국가인 사우디로서는 엄청난 불안정 요소이고 중동도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홍 실장= 반미 감정을 고려할 때 미국은 공세적인 중동 정책을 펴기보다는 각종 유화책으로 여론 안정을 꾀해야 합니다. 이란, 시리아는 물론 사우디에까지 등을 돌리면 문명간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조차 있습니다.

문 교수= 유럽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도덕적 절대주의, 패권적 일방주의, 공세적 현실주의 등을 핵심으로 하는 부시 독트린은 유럽과의 균열이 불가피합니다. 이는 대서양 동맹 구조와 나토 체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미국은 유엔에 힘을 실어주면서 전후 재건에 유럽을 참가시킬 것으로 믿습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장이 '미국 파워의 역설'에서 말했듯이 일방주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잘못된 교훈을 얻는다면 미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미국은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외톨이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패권은 힘뿐만 아니라 정통성에서 구해지는 것입니다.

홍 실장=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인 헨리 키신저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도 현실 정치에서는 국제평화와 세력균형의 관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신보수주의는 막무가내로 나가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항하기 위해 유로화권을 강화시켜온 유럽은 앞으로 미국의 일방주의가 대두할 때마다 이번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엔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인데 향후 세계 질서와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국가들은 어떻게 될까요.

홍 실장= 미국이 이라크전 직후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3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이라는 2개의 전쟁을 치르면서 재정 지출이 컸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이 수사적으로는 강경하게 나올 수 있지만, 북한이 조금만 양보하는 태도를 보여도 대담한 타협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사 북한에 제재 조치를 가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아주 단기간에 그칠 전망입니다.

북 핵 문제에 대해서는 유엔을 통한 제재 조치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 국제 사회의 암묵적 합의이기 때문이지요.

문 교수= 시리아에 대해 미국이 당장 군사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체제 전복 시도 등 압박 정책은 계속할 것입니다. 시리아가 이라크를 지원했다는 이유를 내세우겠지만, 실제는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명시적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지만, 군사 행동의 명분으로 삼기에는 아직 부족한 수준입니다. 또 현재의 실용주의적 개혁파 지도부를 몰아낼 경우 반미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지요.

북한은 미국에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격할 국제적 명분이 매우 약합니다. 주변국들의 반대로 전쟁이 나도 지상군을 배치할 장소가 없잖아요. 군사력 세계 4대 강국에 드는 북한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레드 라인(red line·한계선)을 넘지 않는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전후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요.

홍 실장= 미국은 국제사회의 유일 패권 국가이자, 한국의 유일한 군사동맹이기 때문에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단, 이번 전쟁을 통해 양국 관계를 의존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미군 감축과 주한미군 2사단의 수도권 이남 이전에 대해서도 우리는 미국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여러 가지 카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양측의 체면을 세워주는 범위 안에서 북한과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 핵 위기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는 2사단의 전면 재배치를 끝까지 반대해야 합니다.

문 교수=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주권 침해나 인명 살상 등을 거리낌 없이 자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이 같은 패권적 일방주의에 편승해 실용주의를 추구할지, 평화와 정의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지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동맹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혁신적 발상이 절실합니다.

/정리=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문 정 인 (文正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세대 철학과·미국 메릴랜드대 정치학 박사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홍 현 익 (洪鉉翼)/ 세종연구원 안보연구실장 서울대 외교학과·프랑스 파리 제1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서울대 국제지역원 특별연구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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