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부자'와 '자발적 가난' 어느 쪽이 옳은 길인가. 최근 수년간 저명한 개신교 목회자들은 이른바 청부론(淸富論)을 옹호해 왔다. 기독교인도 축적 과정이 깨끗하다면 물질적 부(富)를 누려도 좋다는 것. 이들은 돈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교했다. 다만 부자가 되는 과정이 깨끗해야 하고, 부자가 된 다음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그러나 이 같은 청부론은 기독교의 본질을 침해할 위험이 있으며 기독교인은 '영성적 가난'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김영봉(사진) 전 협성대 교수는 최근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통해 "청부론이 진리로 통하는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는 1992년부터 협성대에서 신약신학을 가르쳐 왔으며, 미국에서 목회를 하기 위해 2월 교수직을 내놓았다.
청부론을 내세우는 목회자들은 돈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라고 강조해 왔다. 돈을 죄악시하지 말고, 축복으로 여기지도 말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은 당신이 부자 되기를 원한다", "부자가 되는 것이 죄는 아니다"고 설교해 왔다.
이런 설교에 대해 김 전 교수는 "돈이 본질적으로 위험한 것임을 망각하고 있다"며 "예수님은 맘몬(황금의 신)과 하나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부를 추구하다 보면 영적 생활이 고갈돼 위험에 빠지게 된다"며 "돈을 '정직하게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롭게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목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와 부자에 대한 청부론적 태도는 성경으로 보아 정당하지 않으며, 청부론이나 청빈론도 아닌 제3의 길, 즉 영성을 추구한 결과로 가난에 이르게 되는 '영성적 가난'이 옳은 길이라고 그는 밝혔다.
기독교 인터넷 신문 '뉴스앤조이'는 최근 '청부론이냐 청빈론이냐'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청부론 논란을 집중 조명했다. 김 전 교수는 이 곳에 기고한 글에서도 "요즘 베스트셀러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가톨릭이나 불교 지도자들의 책은 존재의 본질을 물으며 하나같이 청빈, 절제, 나눔을 이야기한다"며 "'성공법' '승리법' '열정' '비전'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청부론에 기초한 개신교 서적은 기독교를 종교나 사상이 아니라 '처세술'처럼 느끼게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나아가 지난 수년간 개신교가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세 확장에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청부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부론 지지 목회자들은 "청부론은 검소하게 원칙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께서 부를 허락하신다는 종교개혁의 경제 사상과 맞닿아 있다"며 청부론이 옳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청부론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중산층 기독교 신자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전통적 청빈론의 반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부론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뉴스앤조이와 CBS저널, 월간 기독교사상은 21일 청부론을 지지, 반대하는 목회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토론회를 연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