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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턱이 거대한 벽 같아요"/ 송파구 장애인 편의시설 명예점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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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턱이 거대한 벽 같아요"/ 송파구 장애인 편의시설 명예점검반

입력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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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안 올라가. 어떻게 넘는 거야.""몸을 젖히고 팔에 힘을 더 줘야지. 오른쪽을 더 돌려."

9일 오전 서울 송파구청 옆 길에 휠체어 부대가 출동, 보도를 가득 메웠다. 송파구가 모집한 장애인 편의시설 명예점검반원과 구 관계자들이 휠체어 장애체험행사를 벌이는 중이다.

이날 발대식을 가진 명예점검반원은 모두 30명. 가정주부 등 여성이 25명, 남성이 5명이다. 대부분 점검반원을 자원했고 일부는 동사무소의 추천을 받은 '동네 자원봉사 대장'이다. 명예점검반원은 한달에 1, 2회 정기적으로 장애 체험 및 시설 점검에 나서 생활편의시설을 장애인의 눈으로 살피고 시정조치를 요구하게 된다.

이날 처음 열린 휠체어 장애체험 행사는 구청을 출발, 석촌호수 '새내쉼터'를 왕복하는 약 500m 코스. 30명의 점검반원들이 2인1조로 인도와 횡단보도 걷기, 화장실 이용하기 등을 체험했다. 구청 로비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은 생전 처음 타보는 휠체어로 잔뜩 긴장돼 있었다. 여기저기 조용한 목소리로 "브레이크가 어딨어" "이걸 돌리는 건가" "방향은 어떻게 틀지"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오전 11시 드디어 출발이다. 2열로 줄지어 잘 출발한 행렬은 구청 마당을 벗어나기도 전에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평평한 아스팔트 바닥인데도 방향잡기가 힘들다. 보도에 들어서니 더욱 가관이다. 비포장길 경운기를 탄 듯 진동을 느끼며 휠체어를 움직이는데 팔이 조금씩 뻐근해질 무렵 첫번째 난관을 만났다. 바로 횡단보도.

차도와 보도 사이 2∼3㎝의 턱이 거대한 절벽처럼 다가온다. 기를 써도 올라가기는커녕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비틀거리다 넘어지기 일쑤다. 도우미의 도움으로 간신히 보도에 오른 체험단은 모두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염효심(42·여)씨는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휠체어 때문에 곤혹스러웠다"고 했고 맨 뒤에서 힘겹게 따라온 양계영(52·여)씨는 "손가락 한 마디도 안되는 저 턱이 이렇게 오르기 힘들 줄 몰랐다"며 "장애인들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반환점인 석촌호수 '새내쉼터'에서는 장애인 화장실 이용 체험이 시작됐다. 이날 따라 무척 좁아보이는 장애인용 화장실.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느라 휠체어가 화장실 벽에 계속 부딪치면서 '쿵∼ 쿵∼' 소리를 낸다. "어떻게 몸을 돌리고, 뭘 집고 일어서는 거야?" "앞으로 말고 뒤로 들어가 봐." 실내는 금세 웅성거린다.

"최소한 휠체어가 180도 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문도 커튼식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벽에 걸린 지지대도 위치가 잘못된 것 같구요" 김현정(36·여)씨는 화장실 체험 1분도 안돼 문제점을 술술 풀어놓는다. 휠체어 타는 사람과 미는 사람이 교대해 되돌아 오는 길. 다들 휠체어에 조금은 익숙해진 듯 횡단보도 턱을 혼자 오른 한 주부는 '우먼파워'를 외치며 건강한 팔뚝을 흔들었다.

출발지점인 구청 로비로 다시 모인 체험단원들은 서로 경험담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도와 보도의 턱도 문제지만 보도 위의 맨홀도 무시 못해." "차도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급해. 사고 날 것 같아." "이제 길에서 장애인 보면 그냥 못 지나칠 것 같아. 업고라도 가야지."

구청을 나서는 이들은 장애인을 위축시키는 도로 시설을 찾느라 길거리에서 날카로운 눈을 떼지 못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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