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고대사에 대한 본격적 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양국의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고, 이를 서구 학자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일 고대사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서울대 경제학부 홍원탁(63)교수가 일본 고대국가 형성 과정에 끼친 백제의 영향을 연구한 '백제왜(百濟 倭)'(일지사 발행)를 냈다. 이번 책은 그가 1988년에 영문으로 낸 '고대 한일관계―백제와 대화(大和·야마토) 왜'와 94년의 국·영문판 '백제와 대화 일본의 기원'에 이은 세 번째 노작으로 기존 내용을 보완해 재정리했다.82년부터 이 분야에 매달려 온 그의 일관된 주장은 일본 최초의 통일 정권인 야마토 조정 건국자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인이며, 이들이 바로 일본 황실의 기원이라는 내용이다. 일본 민족의 기원을 대륙에서 건너온 기마민족에서 찾았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1906∼2002) 교수의 기마민족설을 확대 발전시킨 것이지만 접근 방식은 많이 다르다. 우선 결론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각종 문헌 기록을 들어 증명해 가는 방법론을 따랐다. 그는 "일본인들은 390년경에 세운 야마토 정권이 어느 바깥 민족과도 무관하게 일본 민족이 자연발생적으로 국가를 형성한 것으로 보고 싶어한다"며 "하지만 이는 '수요가 공급을 창조한다'는 고전적 경제법칙에서 비롯한 허구"라고 단언했다. 이와 함께 그는 우리 국사학계에 대해서도 그는 "일본 학자들의 축적된 연구업적에 압도된 학계가 그 연구결과에 크게 의존하고, 결국 그 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당초 그가 고대 한일관계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이런 관점을 유지해 왔다. 77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경제학회장 등을 지낸 그는 외국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일본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 등을 통설로 알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속이 상했다.
그 후 일본에 갈 때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 등의 영역판과 함께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속일본기(續日本紀) 등의 고서를 구했고 틈만 나면 정독했다. 그는 그 첫 번째 결과물인 영문판 '고대 한일관계―백제와 대화 왜'를 우선 외국 학자들에게 보냈다. 고대 일본사의 권위자인 미국의 새러 넬슨 덴버대 교수는 '아시안 연구'라는 학술지에 "일본 사학자들의 기존 연구가 일본 내는 물론 서구 사학자들로 하여금 왜곡과 누락을 범하도록 유도했다"는 내용의 서평을 싣는 등 성과도 있었다.
홍 교수는 경제학자로서의 본업과 동떨어진 고대사 연구에 대해 "수십년 동안 일본학자들의 끈질긴 주장으로 세뇌된 서구학자들의 시각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며 "정통 국사학자들이 고대 한일 관계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안식년을 맞아 성북동 자택에서 틈틈이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이번에 나온 책도 영문으로 번역해 해외로 보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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