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은 더러 혼동하겠지만 한국과 중국은 엄연히 다르다. 사람들의 생김새와 언어, 풍습 뿐만 아니라 저변의 정서가 뚜렷이 구별된다. 양국 모두에 격변기였던 20세기를 배경으로 가족사를 다룬 두 연극이 그 차이를 살짝 드러낸다./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중국 "허삼관 매혈기"
극단미추가 강대홍 연출로 10∼20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리는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1996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연극화한 것이다.
배경은 60년대 문화대혁명, 주인공은 우리나라로 치면 김 서방인 소시민 노동자 허삼관이다.
가난했던 그는 피를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피를 팔기 시작한다. 이런 비극적 상황 설정에서 한국이라면 '한'의 정서가 배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 연극은 비극적 상황을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나간다.
피를 팔아 번 돈으로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던 허옥란과 결혼을 하고 세 아들을 얻는데 큰 아들 일락은 아내가 결혼 전 사귄 남자의 아이다.
그래도 허삼관은 아이의 병원비를 위해 피를 판다. 나이가 들어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고기를 사먹으려는 허삼관은 늙고 병든 탓에 아무도 자신의 피를 사주지 않는 사실을 알고 슬퍼한다.
물론 허삼관은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아내의 부정에 맞바람을 피고 돈이 없어도 호기를 부리지만 그 모습이 더욱 사실적이다.
좌충우돌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어려운 시대를 특유의 낙천성으로 극복하는 중국인의 '만만디' 정신을 보여주는 것일까. 중국어 소설을 감칠맛 있게 번역한 배삼식의 대본도 돋보인다. (02)747―5161
■한국 "대대손손"
19일부터 5월4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오르는 '대대손손'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연출가 박근형의 대표작으로 2000년, 2001년에 이어 세 번째인 이번 공연은 일제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소시민 조씨 일가 1∼4대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연극배우인 '나'의 증조 할아버지는 출세하기 위해 일본말을 배우고, 증조 할머니를 일본인 남자와 동침시켜 할아버지를 낳는다. 할아버지는 일본인 기생과의 사이에서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가해 베트남 여자를 임신시키고 도망 온다. 굵직한 역사를 배경으로 깔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무대에 놓인 문을 사이에 두고 오간다.
박근형씨는 "우리집은 예전에 잘 살았는데 동업자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사기를 쳐서 이렇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많은데 그 가해자는 들어보셨나요?"라고 말한다. 근대사의 추한 부분을 모두 일제나 군사정권 탓으로 돌린 조상의 무책임을 빗댄 말이지만 비난하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볼 예정이란다.
엉뚱한 가계의 역사를 모두 훑은 후에 제사장면에서 등장하는 '수지큐' 등의 음악이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영화 '국화꽃 향기'에 출연한 젊은 연기자 박해일이 4년 만에 연극무대에 복귀하고 중견 배우 최정우, 김세동 등이 출연한다. (02)58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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