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에 학교에서 만났으니 50년이 훨씬 넘었나. 셋 다 형편 없었지…. 하하."(서세옥) "나는 퇴학 당하고 7, 8년 후엔가 홍익대 편입했잖아. 창렬이도 중퇴했지, 아마."(윤형근)한국 현대미술의 세 거장, 모더니즘 미학의 선구자들인 윤형근(75) 김창열(74) 서세옥(74) 화백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신작으로 3인 전을 연다. 9∼22일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원류' 전이다.
이들은 1940년대 말 서울대 회화과 선후배 사이. 윤 화백은 "55년 만에 셋이 만나니 기쁠 수밖에. 우리 또래 중 80% 이상은 벌써 세상을 떴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윤, 서 화백이 화랑 나들이를 했다. 파리에서 활동 중인 김 화백은 내년 4월 쥬드폼 미술관에서 열릴 대규모 회고전 준비 때문에 아쉽게도 자리를 같이 하지 못했다.
윤 화백은 물감이 캔버스에서 스스로 번지는 효과를 이용, 서구의 합리주의적·기하학적 추상과 구별되는 동양적 무위자연의 정신을 추상회화로 표현해 왔다. 김 화백은 널리 알려졌듯 물방울 그림으로 공(空)의 세계를 표출한 추상표현주의의 전위다. 서 화백은 문인화에 담긴 정신을 현대적인 추상적 조형성과 결부해 한국 현대미술의 변혁을 이끈 작가다.
윤·서 화백의 대화는 바로 '우리 정신'으로 모아졌다. "산정(서세옥 화백의 아호)의 그림이 동양화라지만 사실은 동·서양화 구분은 없는 거야. 수묵화 운동으로 제일 먼저 동양화의 현대화를 주창한 추상미술의 선구자야."(윤형근) "윤 화백의 작품도 우리 정신이 담긴 거야. 유화지만 사실은 수묵화라고 나는 봐. 왜 동·서양화로 나누지? 정신이 우리 정신이면 그건 우리 그림이지. 부드러운 놈이 강한 놈을 이기고, 조용한 게 시끄러운 것을 제압하지. 부드러움과 조용함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서세옥)
이번 전시회에는 윤·서 화백이 각 2점, 김 화백이 4점을 내 놓는다. 13평의 자그마한 화랑이 이 8점의 무게로 꽉 차는 느낌이다.
갤러리 대표 이화익씨는 "애써 뭔가를 표현하려는 그림보다 힘을 빼고 있는듯 없는듯 드러낸 세 분 대가들의 그림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며 "전쟁에, 북핵에,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이 세 분의 작품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편히 쉬고 가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02)730―7818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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