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라는 단어는 입에서 무엇인가 뜻이 있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어를 배우면 거의 0순위로 알게 되는 단어다.그런데 그것은 말하고 있는 본인 혹은 받아들이는 쪽의 의사에 따라 다른 단어로 바뀌어 쓰인다. 주장하다, 지적하다, 발표하다, 비난하다, 우기다, 격려하다, 칭찬하다, 고집하다, 변명하다, 해명하다 등등. 대부분 그 '말'의 의도에 따라 적절한 단어가 선택되고 그 말의 성질을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말을 설명하는 단어가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장이 다르면 그 입장차는 바로 표현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것을 여실히 나타내는 매체가 언론이다.
한국 신문 기사 중 인터뷰 기사에서 가장 잘 쓰이는 표현은 '…주장했다' '…지적했다'일 것이다. 둘 다 기자가 '주장'인지 '지적'인지 해석하고 판단해 표현한 것이며 기자의 주체적인 가공이 있기 전에는 그냥 '…말했다'이다.
일반적으로 기자나 신문사의 입장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코멘트는 지적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고 반대인 경우 주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주장'이라는 말이 '우기다'와 비슷하게 들릴 때도 있다.
내가 이 부분에 오래 전부터 주목한 것은 일본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독도문제 등 양국 정부의 주장이 엇갈리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일본측 발언은 어김없이 '주장했다, 해명했다'로 표현되고 한국측 발언은 '지적했다'가 태반을 차지한다. 한국 신문이 일본 입장을 대변하는 것도 이상하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신문의 이런 기술방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언론 통제론자도 아니다. 한국신문기사의 대부분이 기명 기사인 이상 기사 안에 어떤 형식이든 기자의 얼굴이 들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말했다''말했다'만 넘치는 일본신문의 담담한 보도자세보다 훨씬 재미가 있다.
문제는 받아들이는 독자의 자세다. 기사의 표현방법 이면에 다분히 기자의 뜻이 깔려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매일 읽다가는 서서히 사고방식이 한 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유념하여 신문기사는 어디까지나 세상을 판단하는 재료를 제공해 주는 매체이고 기자가 주체적으로 쓴 기사는 독자가 주체적으로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자가 '주장'이라고 써도 독자는 '지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언론 문화일 것이다.
도도로키 히로시 일본인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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