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온이다. 백두대간의 서쪽은 어느새 여름으로 건너가고 있지만 동쪽의 봄기운은 아직 미미하다. 서울의 벚꽃이 이미 만개해 조만간 꽃비를 날릴 태세인 것과 달리 동쪽지방의 벚꽃은 꽃몽우리에 잔뜩 물만 올랐을 뿐 화려한 개화를 미루고 있다.푸른 버들강아지를 기대하고 찾아간 주산지(注山池·경북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계절의 법칙은 어김이 없는 법. 버드나무의 잎은 나지 않았지만 파란 봄기운은 물과 나무의 색깔을 바꾸고 있다.
청송의 진산인 주왕산 남쪽 계곡에 위치한 주산지는 오래된 못이다.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착공해 1년 만에 완공한 인공 저수지이다. 한반도의 인공저수지 중 나이로 따질 때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저수지를 만든 이유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다. 아직도 주산지 아래의 농가들은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 사람의 노력과 정성을 하늘도 아는 듯 아무리 가물어도 지금까지 바닥을 드러낸 적은 한번도 없다.
그리 크지 않다. 길이가 약 100m, 폭은 50m이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8m 정도. 그러나 연륜이 풍기는 깊이는 만만치 않다. 깊은 산 속에서 만나는 맑은 물, 경외심이 절로 난다.
주산지를 더욱 신비롭게 하는 것은 물 속에 드리워진 나무다. 왕버들 30여 그루가 물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나이가 많은 것은 저수지와 연배가 같다. 왕버들은 국내에 서식하는 20여종의 버드나무 중 가장 강인하다. 태어나자 마자 1년만에 잎을 무성하게 키워 다른 나무들을 압도한다. 그래서 버드나무의 왕, 왕버들이다.
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는 묘한 정취를 풍긴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무는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이다. 물속에 자기와 똑 같은 모습을 그려 낸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가지가 물속에서도 자란다. 신비감과 함께 섬뜩한 느낌도 받는다. 뭔가 신령스러운 것이 주위를 맴도는 것 같다. 특히 본격적으로 푸르지 않은 이 시기의 모습이 그렇다. 200년이 다 되었으니 용은 아니더라도 이무기 정도는 이 물 속에 있을 것 같다.
주산지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진작가나 화가 정도가 찾았을 뿐 일반 관광객의 발길은 뜸했다. 그러나 조만간 청송의 명소로 부각될 전망이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가 됐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동승에서 청년 스님이 되기까지의 구도의 길을 담고 있다. 현재 후반기 작업이 진행중이다.
물 위에 촬영 세트를 만들어 놓았다. 물 위에 뜬 절이다. 바지선 같은 정사각형의 터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대웅전'이라는 편액을 걸고 있는 이 절집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떠다니는 절'이다. 지금은 물을 막고 있는 댐에 묶여있다. 두 개의 석등과 자그마한 연지(蓮池) 등 절이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도 갖췄다.
주산지는 메인 여행 테마로는 조금 아쉽다. 둘러보는데 30분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매력적인 나들이다. 청송에는 아름다운 돌산 주왕산이 있고, 주왕산만 넘으면 동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영덕이 있다. 영덕은 복숭아로, 복사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른 동해안과 마찬가지로 개화가 더디지만 이번 주말 정도면 분홍색 꽃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이내믹한 드라이브를 원한다면 주산지와 영덕을 잇는 914번 지방도로를 타면 된다. 우설령, 피나무재 등 가파른 고개를 연거푸 넘는 주왕산의 남쪽 도로이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우리땅의 도로 중 가장 험하다.
가는 길
긴 여정이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 계속 34번 국도를 탄다. 안동시내를 관통해 진보에서 우회전, 31번 국도로 갈아타면 청송군이다. 서울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청송읍에서 주왕산 쪽으로 가다보면 주왕교를 건넌다. 건너자마자 두 갈래 길. 왼쪽은 주왕산으로, 오른쪽 언덕길은 주산지로 가는 길이다. 6㎞ 정도 진행하면 왼쪽으로 이정표가 있다. 시멘트 포장길과 비포장길을 3㎞쯤 더 달리면 주산지 주차장에 닿는다. 지난 해 수해로 마지막 구간이 일부 유실됐다. 대형 차량은 회전을 할 수가 없다. 들어갔다가는 뒷걸음질을 해서 나와야 한다. 주왕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54)873-0014.
머물 곳
숙박시설이 비교적 많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청송읍내에 있는 주왕산온천관광호텔(054-874-7000)이 가장 규모가 크다. 주왕산 입구에 꿈의궁전(874-1611) 주왕산가든여관(874-4992) 주왕산장여관(873-5511) 파크장모텔(874-7080) 등이 있다. 주왕산 매표소가 있는 상의리 인근에 청송군에서 지정한 민박촌이 있다. 경북 영덕군과 연계한 여행을 한다면 영덕 인근에서 잠자리를 잡아도 좋다. 칠보산 자연휴양림을 비롯해 강구항 인근에 숙박시설이 많다.
먹거리
주왕산 입구와 달기약수터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주왕산 입구의 먹거리촌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산채. 비빔밥과 정식을 판다. 이제 봄나물이 나올 때이다. 달기약수터의 식당가는 약수를 이용한 음식을 주로 내놓는다. 백숙과 삼계탕 등을 추천할만 하다. 2인분 한마리 기준으로 1만6,000원에서 3만원이다. 영덕으로 넘어간다면 대게를 맛볼 것.
/청송=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