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가가 논문 대필과 표절 천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석·박사학위 논문이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대필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지만 이를 비웃듯, 대학가의 논문대필과 표절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베끼기 문화'가 학부생부터 교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지성과 창의력을 갖추는 지적 훈련을 해야 할 장소인 대학이 표절과 대필로 점철되어있다는 것은 우리 대학의 미래가 없다는 반증"이라고 개탄하고 있다.공공연한 논문대필
직장인들이 많은 특수대학원이나 일반대학원 야간과정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논문대필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대필 광고업체만 30여 곳에 이르고 있다. 한 대필사이트 게시판. "석사 졸업논문이 필요한데 분량은 20장 정도에 주제는 방송법에 관련된 쉬운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급하게 논문을 제출해야 하니 3일 내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등 대필업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논문을 만들어달라는 글이 수십 개씩 올라와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대필거래도 도를 넘어섰다. 서울대 단과대 게시판에서도 '논문을 대필해 드립니다'라는 광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박사논문 대필은 500만원, 석사는 300만원, 학사는 50만원 등으로 '공정가격'이 형성돼 있을 정도다. 한 대필업체 관계자는 "문의자 대부분이 '자기돈 내고 논문 만드는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대학가의 도덕불감증을 꼬집었다.
베끼기도 능력?
학부생들이 제출하는 각종 리포트는 한마디로 '표절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교수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주석 표기도 없이 자기 생각인 양 표현하는 것은 기본. 심지어 인터넷이나 서적에서 내용 전체를 통째로 베껴 작성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K대 경영학과 신모(20)씨는 "베끼는 건 기본"이라면서 "교수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작업'하고 예쁘게 편집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경성대 영어영문학과 김모(23·여)씨도 "30분이면 A4용지 5장 정도는 충분히 '제조'할 수 있다"며 "베끼고 짜깁기하는 요령만 늘어 리포트가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학에서 학부생 리포트를 채점했던 이모(38) 강사는 "지난 학기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란 주제로 과제를 주었는데 학생 대부분이 인터넷상의 보고서 여러 개를 짜깁기하거나, 잘 읽지 않는 서적을 베껴 감쪽같이 '모범답안'을 제출해 채점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교수들은 인터넷 문화에 익숙치 않아 학생들이 베껴온 보고서의 진위(眞僞)조차 구분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아예 손으로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명교(국문학과) 교수는 "인터넷을 참고하는 것 자체는 문제없지만 인터넷상의 정보는 대개 부정확한 만큼 반드시 확인절차를 거쳐 주석을 달아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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