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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사스"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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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사스" 경제학

입력
2003.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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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가뜩이나 이라크 전쟁으로 세상이 어지럽고 경제가 엉망인 판에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이라는 질병이 갑자기 나타나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금세기 들어 처음 발생한 이번 질병은 항공 여행의 보편화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과거와는 다른 특성이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난다. 이러다간 각 국가가 문을 꼭꼭 걸어 잠글 도리밖에는 없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화가 주춤거릴지 모른다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사람의 왕래를 제한하다 보니 재화 자본 등의 이동도 줄게 돼 국제간 교역은 크게 위축된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항공과 관광업계지만, 세계 구석구석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끊임없이 돌아가는 각종 비즈니스 활동도 제약을 받게 된다. 세계 경제는 다시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아시아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아 공황 상태에 이르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아시아 경제의 양대 축인 관광산업과 민간소비 부문이 위축돼 경제 성장이 더뎌질 것이라며 각국의 성장률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태국 재무장관은 "이번 질병이 이라크 전쟁보다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질병이 역사를 바꿔놓은 예는 적지 않다. 우선 14세기 중엽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을 들 수 있다. 당시 7,500만명에 달하던 유럽 인구를 3분의 1 가량 감소시킨 이 병은 봉건제도와 교회 등을 기본체제로 했던 중세 체제에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몽골 제국의 붕괴를 촉진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16세기 멕시코의 아스텍 문명은 천연두로 인해 몰락했다. 20세기 초엽에는 결핵이 대표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더러운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를 못한 결과였다. 그 뒤를 에볼라 에이즈 등이 잇고 있다.

■ 한국의 경우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가 질병보다 더 심각한 성장 저해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작고 개방된 우리 경제는 끊임없이 외부와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번 사태는 이를 상당 부분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 경제도 곳곳에서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용어가 주는 과도한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이 병을 영문 이니셜을 따 '사스'라고 부르고 있지만, 전쟁과 북한 핵에 사스까지 겹쳐 경제 마인드가 급격히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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