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어린이책 견본시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도서 박람회와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가 양대 축을 이룬다. 박람회가 저작권 상담 위주의 상업적 쇼인 반면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는 어린이책의 그림 작가나 출판인들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제공하는 예술 행사다.올해 제40회 볼로냐도서전(2∼5일)은 폴란드를 일러스트레이션 주제국으로 선정, 초청 전시회를 마련했다. 전시회에 선보인 주요 작가 47명의 작품은 대단히 독특하고 예술적이었다. 3일에는 전시장 입구 실내 공간에서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를 소개하는 세미나, 유명 작가 요제프 윌콘 초청 대화도 열렸다.
그런데 세미나 주제 발표자는 뜻밖에도 한국인 이지원(29·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강사·사진)씨였다. 폴란드 문화부 요청으로 주제 발표에 나선 그는 이 분야의 유일한 전문가이다. 지난해 가을 귀국할 때까지 폴란드에서 7년간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화파'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100년 역사의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은 특히 1960년대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화파가 뉴욕을 장악할 만큼 강력한 전통을 자랑하지만 지나 온 역사를 스스로 연구·정리하는 작업은 해놓지 않았다.
이씨는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은 60년대 사회주의 정책의 교육·선전 목적으로 국가가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를 양성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일러스트레이터와 동화작가, 출판사가 모여 협의를 거듭해 좋은 책을 싸게 만들어 많이 보급하면서 질적으로 걸러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너무 나쁘다. "1980년대 폴란드 출판계가 거의 붕괴하면서 판권을 갖고 있던 국영 출판사들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많은 좋은 작품이 출판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작가들이 언제 출판될지 기약 없이 작품을 그려온 지 벌써 20년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세계 최고로 평가 받던 폴란드 그림책은 이제 헌책방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고, 디즈니 만화 등 미국식 그림책 일색으로 변해버렸죠."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는 그는 "폴란드 국내 출판의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작가들이 최근에는 외국에서 출판할 길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폴란드가 공들여 전시장을 꾸민 것도 폴란드 작품을 어떻게든 외국에 팔아보려는 발버둥이라는 것이다. 그의 꿈은 폴란드의 좋은 어린이 그림책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다. 이번 볼로냐의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를 한국으로 옮겨 소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볼로냐=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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