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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살려면 지네약이라도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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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살려면 지네약이라도 먹게"

입력
2003.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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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20년 전쯤 경남 양산 통도사 행자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다. 밥을 짓는 공양주 소임을 할 때 문제가 생겼다. 젊음만 믿고 큰 쌀 가마를 등에 메고 창고에서 공양간까지 운반을 하다 보니 그만 허리에 탈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여러 가지 치료를 시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급기야 스님 되길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속퇴(俗退)' 라는 막바지 상황에 내몰렸다. 눈 앞이 캄캄했다. 그때 절 뒷마을 할머니 한 분이 안타까워하며 "지네를 삶아 그 국물을 마시면 효험이 있을 텐데…"라고 하셨다.마지막으로 그 치료방법을 택했다.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수지하려는 예비승이 닭과 지네를 삶아 복용하는 일은 산중 분위기에서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여러 공론을 거쳐 약을 먹기 위해 절 뒷마을 할머니 집에 갔으나, 그 짙푸른 약물은 냄새며 맛까지 세상에서 가장 고약했다. 비위가 강한 편이었지만 좀처럼 마실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할아버지께서 막소주를 가져와 양은대접에 콸콸 부어주며 "살려면 먹어야지"라며 지네약물을 들이킨 뒤 소주를 그대로 들이키라고 했다.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은 게 아니라 반대로 술보다 더 독한 약을 먹고 소주로 그 독기를 중화시키는 셈이었다. 간신히 약 먹는 것을 성공하고 절을 향해 산길을 걷는데 갑자기 배가 사르르 아파오더니 그만 몽땅 설사를 하고 말았다. 이 아까운 약을 어찌하랴 하는 생각도 잠깐, 휴지가 없지 않은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도리가 없었다. 급한 나머지 입고 있던 런닝셔츠를 휴지대신 썼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소쩍새가 울어댄 그날 밤 절에 돌아가는 길이 어찌 그리 서럽던지.

독한 마음을 먹고 출가했건만 내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행자실에 도착해 잠자리에 드는데 내의가 없어 그 연유를 설명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큰방 스님들에게 불려가 참회하고 벌을 받았는데 3만 배였다. 시주 받은 옷을 가볍게 썼다는 죄목이었다. 아픈 허리를 잡고 하루 3,000배씩 열흘 동안 부처님께 절을 했다.

불교에 개차법이라는 게 있다. 계율을 열고 닫음에 융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계율에 얽매이다가 더 큰 것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3만 배의 효험인지, 지네를 끓인 약을 먹어서인지, 거짓말처럼 허리가 완쾌되어 스님이 될 수 있었다. 지네·닭·소주라는 약에 계율을 적용했다면 결코 스님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나라 안팎이 전쟁이니 대북송금을 둘러싼 특검제니 하며 온통 아수라판이다. 정치나 국가간의 이해관계에는 개차법이라는 게 없는 모양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면서 근본정신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틀에만 묶여 자승자박하는 꼴이다. 정치하는 분들부터 부처님께 무릎 꿇고 한 수 배울 일이다.

지 거 (智炬) 조계종 영성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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