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3짜리 외동딸을 최근 미국에 보낸 친구 하나는 매일밤 끊임없이 군것질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텅 빈 딸아이 방 문을 열어볼 때마다 그 허전함을 견딜 수 없어 무언가를 먹게 된다는 하소연이었다.“남편도 표현은 안 하지만 딸애가 보고싶어 미치겠나 봐. 그런데 정작미국에 가 있는 본인은 룰루랄라 잘 지내는 눈치니 정말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어, 우리가.”
하지만 1년 전 고2짜리 딸을 시카고 근처 사립학교에 입학시킨 또 다른친구에게 자식 그리움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유학 비용이 정말 장난이아니기 때문이다. “자식 미국물 먹이느라 이렇게 등골이 휘는 부모 심정을 걔가 알까 싶어.”
유학 열풍이 부유층에서 샐러리맨 중산층으로까지 번진 것은 어제 오늘이야기가 아니다.의사, 변호사,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맞벌이 부모가 한쪽연봉을 몽땅 희생해 가며 자식 유학 보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고백하자면, 우리 집안도 바야흐로 그 대열에 끼어 들게 됐다. 미국서 중학 시절을 보낸 큰 애가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그저합격만 하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는데 원하는 대학에서 소식이 오고 보니 지금은 학비 걱정에 밤잠을 설칠 정도다.
그저 조금 괜찮은 월급장이에 불과한 우리가 자식 유학 보내는 건 문자그대로 ‘뱁새 황새 따라가는 격’이라는 자격지심도 든다. 마침 한 신문은 ‘신(新)우골탑 시대’가 왔다고 보도하고 있다. 옛날엔 소 팔아 자식대학 보내느라 부모들의 허리가 휘었지만, 요즘은 경기침체 속에 교육비가천정부지로 치솟아 서민 가계가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나는 여기에자식 유학 비용 대느라 전전긍긍하는 우리 같은 중산층 부모들도 끼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누가 보내라 그랬느냐고? 맞는 말이다. 다만 우리 부모들의 우골탑이 근대 한국 건설의 바탕이 되었듯 우리 세대의 신 우골탑은 21세기 한국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는 확실하다. 미국 유학생의 숫자가 그 나라교육의 부실을 말해준다는 주장도 있지만, 역으로 그건 확실히 그 나라의경쟁력으로 풀이된다는 뜻이니까.
이제 몇 달 후면 헤어져야 할 큰 애와 매일밤 산책을 시작했다. 그리곤누가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한다. “너 유학 비용, 엄마 아빠 최대의 도박이야. 나중에 꼭 돌려줘야 해.” 이게 배포 작은 엄마의 애정 표현임을 그 애는 알까
이덕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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