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이 조성한 230억원대 비자금의 조성 경위와 사용처 등에 대한 재추적 수사에 착수키로 함으로써 정치권이 검찰 수사의 타깃이 되고 있다. 검찰은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난무함에 따라 속전속결식 수사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정치권 겨냥하는 검찰 수사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의 수사대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민주당 실세 등 정·관계 인사들로 압축된다. 나라종금은 2000년 1월 2차 공적자금이 투입된 지 4개월만인 5월에 퇴출됐다. 두 차례나 영업정지를 당한 나라종금이 퇴출을 막고 2조998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낸 것은 로비를 통한 금융당국의 '봐주기'때문이라는 것이 의혹의 시작이다.
김 전 회장은 비자금 230억원을 23개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하며, 유은성 전 부회장(도피중)과 최은순 전 LAD 대표를 통해 살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은 민주당 고위 간부 H씨에게 15억원, P의원에게 2억원이 전달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이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을 둘러싼 자금수수 의혹을 맨먼저 규명키로 한 것은 사건수사의 종국적 지향점이 정치권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안씨와 염씨, 사법처리 가능할까
김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안희정, 염동연씨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지는 검찰의 최대 고민이다. 정치자금법의 경우 공소시효(3년)가 지났다. 김 전 회장은 아예 정치자금 성격을 부인하고 있다. 나라종금 퇴출저지를 위한 로비자금이라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지만,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5,000만원을 받은 염씨는 후배인 김 전 회장으로부터 여행경비조로, 2억원을 받은 안씨는 오아시스샘물 투자비로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이 오간 1999년 8월과 6월 이후 나라종금 퇴출논의가 본격화한 만큼 전후관계 입증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나라종금 퇴출을 막아달라"는 등의 대가성이 입증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만일 오아이스샘물 대표였던 안씨가 2억원을 회사 밖으로 빼내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면 업무상 배임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이 경우 오아시스샘물은 노무현 대통령 진영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던 곳이었다는 정치적 '뇌관'이 될 수 있다. 현재로선 돈의 흐름과 성격이 두 사람의 사법처리 여부를 점칠 수 있으나 건네진 돈이 모두 현금이어서 검찰은 자금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검찰 봐주기 수사했나
검찰은 지난해 김 전 회장 기소 당시 법원에 수사기록을 제출하면서 최씨가 안씨 등에게 금품을 줬다고 자백한 부분과 비자금 내역서를 누락시킨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최근 의혹이 다시 불거지자 기록 공개 의지마저 내비쳤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최씨 자택 압수수색에서 검찰이 확보한 안씨의 명함에 안씨가 '2억원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써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돈 전달을 지시한 유모씨가 해외도피 중이고 돈이 흘러간 물증이 없어 수사가 어렵다"고 해명했던 검찰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또 최근까지도 "김 전 회장이 계속 '말 할 수 없다'며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던 검찰은 김 전 회장 변호인이 "3월 하순 검찰조사에서 김 전 회장이 돈을 건넨 사실을 시인했다"고 말함으로써 거짓 해명 의혹까지 받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봐주기 의혹은 검찰의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을 안씨 등 노 대통령의 측근 2명이 사법처리를 면할 경우 검찰은 사건의 진실에 관계없이 '면죄부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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