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화의(법원 중재에 따른 채권변제 유예 및 기업 회생 절차) 기업인 진로의 법정관리 신청을 둘러싸고 회사 및 국내 채권단과 해외 채권자인 골드만삭스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1998년 화의 개시 때부터 시작된 진로에 대한 골드만삭스의 '딴죽 걸기'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사건건 대립으로 이어졌고 양 측의 질긴 '악연'으로 국내 대표적 소주 브랜드의 경영 정상화는 고비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골드만삭스의 자회사인 세나 인베스트먼트의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진로는 6일 "악의적인 구조조정 방해 행위"라며 국내외 채권단과 접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우리은행·삼성증권 등 국내 채권단도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7일 채권단 회의를 열어 골드만삭스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진로는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신청이 그 동안 있었던 구조조정 및 경영정상화 '발목 잡기'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98년 이후 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진로 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최대 단일 채권자로 올라선 골드만삭스는 2000년 8월 진로건설과 진로종합식품에 대해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고, 2002년 3월에는 진로 홍콩법인에 대해서도 파산을 신청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또 지난해 5월에는 일본 상표권에 대한 가압류 조치로 일본 내 소주사업 매각이 무산됐으며 부동산(본사 사옥) 매각 등 자구노력도 골드만삭스의 반대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진로측 주장이다. 진로 김영진 상무는 "자본금의 10%를 넘는 채권을 보유한 채권자는 언제든 법원에 파산과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다"며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면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돼 기업가치가 급락하고 채권단의 상환금액도 줄어들지만 현재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이 같은 행보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냉엄한 자본의 논리와 진로에 대한 '원초적'불신이 깔려있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97년 진로의 부도 직후 골드만삭스가 한 때 경영자문과 구조조정 컨설팅을 맡았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계약이 무산됐다. 진로는 이를 6년간의 악연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는 "진로는 한국 유수의 주류회사이긴 하지만 지배주주만이 이익을 보는 낙후된 기업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불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진로가 1조2,000억원의 외자유치 및 15년간의 구조조정 제안서를 낸 데 대해 "지난 5년 간 원금상환 유예를 해왔지만 진로는 채권자들에게 적절한 상환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진로측이 제시한 계획은 현실성·신뢰성·투명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국내 채권단은 무담보채권을 가진 해외 채권자가 법정관리 신청을 통해 외자유치 및 채무재조정 협의 과정에서 채무를 우선 상환 받거나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가 우호적인 채권자들을 모아 법정관리 관철을 통해 기존 대주주의 주식을 소각한 뒤 제3자에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갈등
▲1997년 말 진로·골드만삭스 구조조정 및 경영컨설팅 계약 무산
▲1998년 골드만삭스, 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진로 채권 집중 매입
▲2000년 8월 골드만삭스, 진로건설 파산신청(서울지법 파산부) 골드만삭스, 진로종합식품 파산신청(서울지법 파산부)
▲2002년 3월 진로, 골드만삭스 상대 채권권리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골드만삭스, 진로 홍콩법인 파산신청(현재 재판진행 )
▲2002년 5월 골드만삭스, 일본내 상표권 가압류. 일본 소주사업 매각 무산
▲2002년 8월 골드만삭스, 진로 보유 부동산매각 반대
▲2003년 4월 골드만삭스, 진로 법정관리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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