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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대통령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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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대통령의 로맨스

입력
2003.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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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특히 정치인들에게 딱 들어맞는 명언이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인데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틀렸다고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여야가 바뀌고 입장이 바뀌면 보기 민망할 정도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취임 후 사십 여일 동안 노 대통령에게도 그런 일이 몇 건 있었다. KBS 사장 선출을 둘러싼 잡음, 옛 동지들을 대통령 특보로 임명한 것 등은 반대자들이 보기에 명백한 스캔들이다. 노 대통령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이 만일 지금 야당이라면 그런 일들을 로맨스로 봐주겠는가.

노 대통령은 "누구든지 인사청탁을 하면 패가망신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학연 지연 등을 통한 인사청탁의 폐해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그의 무시무시한 경고는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대선 때 자신의 언론고문을 지낸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추천한 것은 청탁일까, 아닐까.

청와대 측은 그 동안 KBS 사장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서동구씨에게 방송을 맡아달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노 대통령은 "그를 추천했지만 이사회에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노 대통령은 "KBS 사장에 대한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는 만큼 대통령은 후보를 추천할 수 있고 사전에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사회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면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이사회의 권한을 존중하는 한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자신이 후보 추천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통령은 KBS 사장으로 누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추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조나 시민단체만 사장 후보를 추천하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추천을 압력으로 느끼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사장을 선출할 수 있는 강력한 이사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노 대통령은 KBS 사장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지 않고 이사회의 제청을 받도록 규정한 법 정신을 깊이 새겨야 한다. 장관을 임명하는 것과 공영방송의 사장을 임명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론 개혁을 부르짖는 대통령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보내려 할게 아니라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국회에서 첫 국정연설을 했던 2일 국회는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날 노 대통령은 엉뚱하게 KBS 문제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그는 38분이 걸린 국정연설에서 원고에도 없던 KBS 문제 해명으로 10여분을 할애했고, 청와대로 돌아가자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저녁에는 KBS 노조 대표 등을 만나 담판을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로맨스가 스캔들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좌충우돌 전력투구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국정연설을 하다가 신상해명이 웬 말이냐,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노조 대표들과 대화를 하다니 노사협의를 하는 거냐, 중요한 국가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KBS 일에 왜 그렇게 매달리느냐는 비난만 빗발쳤다. 그의 말대로 취임 후 '최악의 날'이었다.

노 대통령은 힘든 경험을 하고 있다.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 인정사정 없이 매도되는 억울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 등을 특보로 임명키로한 것은 그간의 도움에 감사하는 것일 뿐 특별한 임무나 보수가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청와대는 해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보임명이 사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사적으로는 인정이 넘치지만 공적으로 보면 특보 임명을 남발하는 것이다.

로맨스냐 스캔들이냐는 국민의 시각에서 판가름이 난다. 대통령은 로맨스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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