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촌을 지나 연세대 옆의 작은 언덕배기를 올라가면 흰 목련이 핀 예쁜 집이 손님을 맞는다. 건축가 김중업이 프랑스 유학 후 처음 지었다는 이 집의 이름은 '마리아칼라스'. 나무 울타리를 열고 카페로 들어서면 고소한 커피향 만큼이나 아름다운 한 모녀의 따뜻한 전시가 손님을 맞는다. 4월2일부터 6월5일까지 서대문구 연희동 '마리아칼라스'에서 열리는 '안홍선 라이프 65' 기획전은 스토리 퀼트 작가 안홍선(65)씨를 위해 딸 양형윤(38)씨가 준비한 '모녀합작' 전시회다. 안씨의 나이 예순 다섯을 기념해 정확히 65일 동안 열린다."제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집에 있는 천 조각을 모아 이야기를 가진 작품으로 만들어 그림 대신 걸곤 하셨어요. 물론 그 때는 '퀼트'라는 명칭도 몰랐을 때지만 어린 마음에 못쓰는 헝겊이 예쁜 조각보로 탄생하는 게 너무 신기했었죠." 안씨의 초기 작품 중 30년의 세월을 견뎌낸 것은 음악을 전공한 양씨를 그려낸 '연주하는 딸' 한 점 뿐이라 아쉽다는 말도 덧붙인다.
일반 퀼트와 달리 스토리 퀼트는 작품이 각각의 제목과 이야기를 갖고 있다.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면 멋진 시화가 곁들어진 시집을 읽은 듯 마음이 훈훈해진다. 실제로 안씨가 직접 시를 단 작품도 많다. '고향 생각은 언제나 아이/ 색동옷 꽃신 신은 채/ 헤매는 반백의 아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처럼 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린 것도 있고, '고운 빛 잃은 아내에게/ 예쁜 할머니 부르는 소리 들리는 곳…예쁜 할머니는/ 낙조에 몸을 싣고/ 풀물 꽃물 저어 간다'처럼 남편과의 전원생활을 담담히 그린 시도 있다. 딸은 퀼트를 짓듯 뽑아낸 엄마의 시를 모은 시집을 전시회와 함께 선보인다. '사라져 가는 연습, 물안개처럼 이슬꽃처럼'이라는 시집 제목은 딸의 작품이다.
길이 2m, 폭 1m가 넘는 화려한 퀼트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수십 점의 닭 모형이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돼 아들과 함께 수년간 유학길에 오른 '닭띠' 며느리가 그리워 하나 둘 씩 모으다 보니 수집 수준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 며느리도 최근 돌아왔다.
몸이 약해져 7년 전 오산으로 이사하면서 안씨는 더욱 작품에 전념했다. 생활에서 느낀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 온 안씨는 사회적 이슈로 퀼트의 이야기를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벽마다 천을 걸어놓고 밤이고 낮이고 분주하게 바늘을 움직인 결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하는 '월드컵 전야제'나 전쟁을 맞아 평화의 바람을 담은 '바그다드의 꿈' 등 나라와 세계를 위한 작품도 탄생했다.
작품 철학을 묻는 질문에 "완성됐을 때의 즐거움도 크지만 나이 들었다고 무료하게 시간 허비하는 게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라는 겸손한 질문이 돌아온다. 엄마의 작품을 감상하고 빛내는 것만으로도 바빠 직접 퀼트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딸 양씨는 '달팽이'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서 잠시 말을 잊는다.
"엄마는 이 작품을 자화상이라고 하세요. 세상을 조용히 느릿느릿 사시겠다구요. 이 작품을 보면 색색의 자연을 천천히 느끼면서 사시는 엄마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저의 세 아들에게 저도 달팽이 같은 엄마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딸의 얼굴에 봄빛 미소가 번진다. 전시 문의 (02) 3142―4288.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스토리 퀼트란
퀼트란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 등을 넣어 무늬를 놓은 서양자수를 뜻한다. 이 중 한 작품마다 제목과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것을 '스토리 퀼트'라 한다. 아이 옷이나 가방 등 생활 소품으로 쓰이는 일반 퀼트와는 달리 작가의 창의성을 가미해 예술성과 작품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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