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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3군 청년장교 6명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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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3군 청년장교 6명과 만남

입력
2003.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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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3군의 청년장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원이 지난달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갓 임관한 초급장교들이다. 각 군별로 남녀 한명씩 모두 6명의 신참 소위들이 아직 교육훈련 중인 전남 장성(육군 보병학교), 경남 진해(해군 교육사령부)와 진주(공군 교육사령부)에서 급거 상경했다. 국방부에서는 "3군의 청년장교 대표들을 한 자리에 모은 그룹 인터뷰는 아마 처음일 것"이라며 "그런 만큼 각 군에서 최고의 엘리트들을 엄선했다"고 자랑스럽게 이들을 추천했다. 제복(制服)은 확실히 그 자체로서 강렬한 힘과 매력을 갖는다. 규율과 책임감, 그리고 자기절제가 전제된 나름의 집단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리라. 지난 금요일(4일) 오후 한국일보 인터뷰실은 이들 6명 젊은이의 칼같이 줄 세운 3군 장교정복 차림새만으로도 아연 생동감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두 시간여에 걸친 지루한 인터뷰 동안 젊은 사관들 중 어느 누구도 꼿꼿하게 등을 세운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원래 인터뷰의 묘미란 허를 찌르는 데 있는 법이다. 말하자면 구체적이면서도 미묘한 이야기들을 최대한 끄집어 냄으로써 피회견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뜻밖의 이미지까지도 구성해 전달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터뷰는 미소로 분식된 치열한 공방전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미리 고백하건대 이런 측면에서 이날의 '전투'는 기자의 완패(完敗)로 끝났다.

당초의 인터뷰 목표는 이런 것이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압도적인 진보 열풍―반미, 파병반대, 달라진 대북인식과 안보상황 등이 포함된―에 대해 그 또래 청년장교들은 어떤 인식을 하고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어쩌면 흥미 있는 갈등양상도 나타나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러나 이들은 기습과 정공(正攻) 등, 어떤 식의 공격에도 '바람직한 군인의 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놀라운 방어력을 보여 주었다. 전투상황의 일부를 보자.

― 생도 때와 현역장교가 된 지금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혀 의외의 답이 나왔다) 글쎄, 임관하고 나면 병사들에게 말을 놓을 수 있는 정도일까. (다들 웃음) 아직은 좀 어색하지만."

― 부사관 한테도 말을 놓나.

"보통은 그렇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을 경우는 아무래도 예우를 해야하지 않느냐. 사병들은 대부분 동생 뻘이거나, 나이가 많아야 동갑 정도여서 괜찮다."

― 여군일 경우는 장교라도 좀 만만하게 보지 않는가.

"(단호하게) 전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 사회에 있는 친구들은 자주 만나는가.

"주말에 가끔 본다. 시간이 없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일반대학을 1년 다니다 사관학교로 진로를 바꿔서 사회친구가 많은 편이다. 휴일에 자주 본다."

―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대화들을 나누는가.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얘기를 한다."

"의사, 목사 등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만나 대개 제각기 자기 분야에 대해 얘기를 한다."

― 그런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면 인식의 차이를 많이 느낄 텐데.

"많은 얘기들을 진지하게 나누다 보면 결국은 다 같은 생각으로 귀결된다. 결론은 항상 인간적인 것으로 모아진다."

― 그래도 기본 마인드부터가 다르지 않느냐. 요즘은 그 또래 사회에서 진보가 아니면 왕따를 당할 수 있는 분위기인데.

"그 부분에 대한 답변은 자칫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대답하지 않겠다."

― 어쨌든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여러분들이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

"진보와 보수를 명확히 선을 그어 말하는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문제나 현상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가능한 그것 전체를 넓고 신중하게 보고 판단하려 노력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를 보수적이라고 말한다면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다."

― 그 말을 바꾸어 말하면 여러분의 보수성은 책임감 때문이라는 것으로 들리는데.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사관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요체가 바로 책임감이다."

― 그렇다면 최근의 반전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못 마땅할 것 같은데.

"반전 같은 목소리도 사회에서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당연한 것 아닌가. 모든 견해가 존중돼야 한다고 믿는다."

― 민주주의 원칙론이 아닌 군인으로서의 견해를 묻는 것이다. 군인은 결국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것은 맞다. 사회의 반전 분위기가 어떻든 우리는 군인이다. 군인은 (그런 사안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이 명령하면 수행하고 따를 뿐이다."

"생도 3학년 때 한 선배가 말했다. '군은 절대 국가정책 결정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군은 추진력이 되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국가의) 머리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 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전쟁 역시 군의 뜻이 아니라 국가의 큰 정책적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 아닌가. 군인이 극단적인 진보나 보수에 치우칠 수도, 또 치우쳐서도 안 되는 것이 그 때문이다."

― 미·이라크전 파병 문제로 좁혀보자.

"개인적으로는 파병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어떻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노력은 세계적인 대세인데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파병은 미군과의 공고한 협조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미·이라크전 자체(도덕성 논란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들렸다)만 보아서는 안 된다. 정치, 외교, 경제적 요인을 모두 포괄한 우리의 안보환경 전체에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 미묘한 문제에 대한 집요한 질문에도 끝내 구체적 답변을 끌어내지 못한 기자가 못내 안쓰러웠던지 여군 소위 한명이 개인적 경험담을 부연해 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 대학에 들어가 풍물놀이패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운동권에도 몸 담았던 친구다. 그 친구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까지도 아주 혹독하게 비판하곤 했다. 결국 미국의 앞잡이에 불과한 나쁜 사람이라는 요지였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한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 친구의 견해가 옳든, 그르든) 너무 극단적인 한 측면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에 결쳐 그 친구에게 여러 다양한 현실적 요소와 시각도 있음을 얘기해 주었다. 나중에 그 친구는 '무엇보다 내 견해를 진지하게 들어주어서 너무나 기뻤다'면서 나의 생각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것도 대한민국 장교로서의 한 역할이라는 생각을 했다."

― 군사적인 얘기를 하자. 이전 걸프전과 이번 미·이라크전과 같은 첨단전을 보면 전쟁과 전투의 개념이 많이 바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어떤 안보환경에서도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의 유무다. 그런데 그것은 군사력의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 해·공군력의 비중이 더 커져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사실 이 문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주 잠깐 어색해졌다. 육군측이 "걸프전 외에도 코소보, 아프간 등지에서 여러 형태의 현대전이 치뤄졌다. 전쟁평가는 쉽지 않다. 상황에 따라 많이 틀리다"고 이견을 제시하고 나섰다. 결국 이들은 "3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가가 중요하다. 특정한 군 하나가 강하다고 해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라는 원칙론적 동의로 마무리 지었다)

― 여러분과 얘기하다 보니 동년배의 다른 젊은이들에 비해 대단한 자부심들이 느껴진다. 도대체 그 자부심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자신감이다. 일반대학은 주로 지식 전달에 그친다. 하지만 사관학교 교육은 학업 뿐 아니라 군사, 인성교육까지도 포괄한다. 스파르타식 교육과정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자신감이 단련된다."

"희생정신이다. 지휘관과 리더의 차이를 아는가. 지휘관은 계급과 직책으로 통솔하는 것이며 리더는 인격적인 능력으로 부하를 이끄는 것이다. 인격적 우월성은 자기희생의 정신을 전제한다. 그것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 그렇지만 사관학교나 군이라는 특수조직 속에서는 사고(思考)가 규격화할 위험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일반인들에 비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그 것이다. 휴일에 가급적 여러 사람을 만나려 애쓴다. 많은 양의 독서와 영화감상 등을 통해 간접경험을 쌓으려 노력한다."

― 여러분의 자부심과 어려운 임무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군을 대하는 시각에 섭섭한 점은 없나.

"솔직히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선진국일수록 군과 군인의 명예를 존중한다. 일본 같은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국가만 제외하고. 하지만 5, 6공까지에 걸쳤던 부정적 인식도 이제는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군의 위상이 높아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에만 얽매이면 절대 발전할 수 없다. 현재로서 평가를 제대로 해달라. 국민이 군의 명예와 사기를 지켜주어야 한다."

― 그렇다면 군 스스로도 변화한 모습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군은 기업이 아니지 않느냐. 광고홍보를 할 수 없다. 그냥 묵묵히 본연의 임무를 다하면서 그것으로 평가를 받을 뿐이다."

자, 일단 여기까지다. 어떤가. 대한민국 장교라면 당연히 그렇게 얘기할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읽는 느낌인지, 또는 너무들 '말조심'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기자도 그랬다. 그런데 말미에 안효주(安孝珠) 해군소위가 문득 가슴 뭉클한 얘기를 꺼냈다.

"월드컵 4강전이 열리던 지난해 6월29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날 사관학교에서 서해교전이 발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40여일이 지났을 때 경기 분당의 국군통합병원에 병문안을 하러 갔습니다. 4년전 사관학교 가입교 시절 4학년 생도로서 우리를 보살펴 주었던 이희완(27) 중위가 한쪽 다리에 총상을 입어 다리를 절단한 채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슴 아파하는 우리를 그는 오히려 다독였습니다. '나는 여전히 해군을 사랑하고 있다. 계속 해군에서 근무할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희생을 치르든 국가를 방위하는 임무를 저버리지 않겠다.' 그 자리에서 저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차분히 얘기하는 동안 그는 감정의 북받침을 애써 참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 젊은 장교들이 가장 자주 입에 올린 '조국' '명예' '군인정신' '사명감'이니 하는 단어들을 다소 냉소적으로 듣다가 이 때 슬그머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건 이들로서는 결코 의례적 수사(修辭)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쩐지 박제(剝製)된 어투처럼 들렸던 앞서의 답변들도 비로소 생생한 설득력을 얻어 되살아 났다.

더 이상 그들을 시험해 보겠다는 생각을 접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도 인생에 대한 고민은 있지 않겠느냐." 장교들은 처음으로 딱 그 또래다운 젊은이 표정으로 돌아가면서 돌연 떠들썩해졌다. 대답은 대략 일치했다. 역시 '사랑과 결혼'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벌써 결혼합니다. 이번, 다음 주 휴일에 다 동기 결혼식장을 가야 합니다. 여자친구가 있긴 있는데 만날 시간이 워낙 적어서 힘이 듭니다. 안정된 군인의 삶을 위해서는 빨리 가정을 꾸리는 게 좋다고들 얘기하는데…."

"우리 같은 여군은 부대에 있는 남자들 외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대학생 친구들 미팅에서도 소외됩니다.(웃음) 참, 그렇다고 사진을 먼저 보여줄 수도 없고…. 결혼을 해도 파일럿이 되면 육아나 임신도 힘듭니다. 당장의 목표는 2년에 걸친 비행조종훈련을 완벽하게 마치는 겁니다. 동기들 중에서 50% 정도만 조종사가 되지요."

"역시 앞으로의 가정생활입니다. 해군은 가정을 이루는 것 이상으로 가정을 지키기가 힘듭니다. 함상근무를 하면 짧아도 보름 정도 바다에 있어야 하는데 가정생활, 특히 육아가 걱정입니다."

"육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곧 전방 GOP에 나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6개월씩 집과 떨어지게 됩니다.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지요. 수시로 부대를 옮겨 다니며 생활 근거지를 바꿔야 하는 것은 모든 군인 가정의 어려움입니다."

/이준희 편집위원 junlee@hk.co.kr

■ 인터뷰를 끝낸후…

군에 갔다온 남자들이라면 혹시 기억하는가. 상병이나 병장쯤 되어 대개 대충대충 하루하루를 때우는 요령에 익숙해질 때쯤 난데없이 부대에 들이닥치던 '신참 소위'들의 모습을.

그럴 때면 온 부대는 오로지 원칙과 교범, 군인정신으로만 똘똘 뭉친 듯한 그들의 날선 고함과 각진 걸음걸이에 한동안 바짝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그랬다. 그 당시 그들은 나태해진 일상을 번쩍 깨우는 청량한 자극제와도 같았다.

이날 이제 겨우 스물 서넛된 청년장교들에게서 받은 느낌도 그때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모두(冒頭)에 일찌감치 고백했듯 비록 실패한 인터뷰였지만 그래서 뒷맛은 오히려 유쾌했다.

이 어지럽고 혼돈스러워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는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묵묵히 제 길을 가고있는 이런 '프로'들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이들이 말하는 '명예와 희생'을 회의(懷疑)하지 말라. 비록 아직은 젊어 미숙할지라도 우리들 삶의 위험을 기꺼이 대신해 수탁(受託)한 이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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