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강요했다며 전교조로부터 사과 요구를 받아 온 초등학교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교육계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최근 일선 교육현장에서 불거지고 있는 전교조의 활동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4일 오전 10시께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이모(78·여)씨의 집 옆 은행나무에서 이씨의 아들인 예산 B초등학교 서모(57·예산군 예산읍) 교장이 빨랫줄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부인 김모(52)씨가 발견했다.
김씨는 "남편이 매일 새벽 4㎞ 가량 떨어진 어머니 집에 문안인사를 다녀와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데 오늘은 돌아오지 않아 이웃주민과 함께 가봤더니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서 교장이 최근 전교조로부터 사과 요구를 받은 뒤 밤잠을 못 자며 괴로워했다는 가족의 말과 외상이 전혀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서 교장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지난달 31일 "서 교장과 이 학교 교감이 기간제 여교사(29)에게 차 시중을 강요, 교권을 침해하고 전교조 비하 발언을 했다"며 이들의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 여교사는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지난달 3일부터 출근했는데 교감이 매일 교장의 차 시중을 할 것을 요구해 거절하자 서 교장이 불러 '윗사람이 시키는데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야'라고 말했고 수시로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와 야단을 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 교장은 교육청의 진상조사에서 "여교사에게 계약서에 있는 일부 잡무에 관한 사항을 잘 이행하라고 주지시켰을 뿐 차 시중을 강요하거나 전교조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었다. 이 여교사는 지난달 20일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말썽이 일자 교육청의 권고로 1일자로 재임용됐다.
고재순(49) 전교조 충남지부장은 "교육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결국 이처럼 안타까운 사태를 초래했다"며 "서 교장의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99년 9월 부임한 서 교장은 방학 때도 학생들을 위해 손수 학습자료를 만들고 시골 학생들에게 부족한 특기적성 교육에도 최선을 다하는 등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고 말했다.
한편 예산군 초·중등 교장단 장학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서 교장이 이 같이 참담한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고뇌에 동병상련의 좌절을 느낀다"며 "서 교장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닌 한국교육 현장의 죽음"이라고 밝혔다. B초등학교 학부모 대표 및 지역 학교 공동체 대표 일동도 "교육청과 수사당국은 이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밝혀 교육 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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