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김운회 서동훈 지음 김영사 발행·2만4,900원지난해 6월 1일자 한 일간지의 '삶과 문화'라는 칼럼은 영화 수출의 기득권 문제를 이야기하며 느닷없이 삼국지 현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것은 유명 작가들처럼 나도 '삼국지'를 한번 다시 써서 돈 좀 벌어보아야겠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삼국지가 유명 작가에 의해 다시 씌어져 많이 팔린 것은 좋게 보면 그들의 문학적 기득권이고 나쁘게 보면 이름을 팔아먹는 일이다. 문학정신의 구현이건 기득권이건 간에 '삼국지 현상'은 문학이 자본주의 안에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삼국지'를 '한번 다시 쓴' 유명 작가가 아니고 '삼국지' 원문을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번역하려고 오랫동안 씨름해 온 사람으로서 그 칼럼을 읽고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사실 한국에 '삼국지'가 넘쳐도 정작 원문 '삼국지'를 정확하게 번역한 책은 한두 권에 불과하고 대부분 오역 투성이다. 정말 양심적인 학자나 작가에 의해 좀더 정확하게 번역된 '삼국지'는 앞으로도 계속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 해제'가 '더 이상 나관중 '삼국지'를 번역한 작품은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한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말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또 연의(演義)한 '삼국지'는 더 이상 나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면 거기에는 동의할 만하다.
조선시대 예절 교과서인 '사소절(士小節)'에서도 '어린이들은 연의소설을 읽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연의소설 중 대표적인 것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정사에 해당하는 진수의 '삼국지'를 연의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유유가 세운 송나라 신하 배송지가 존유폄조(尊劉貶曹·유비를 높이고 조조를 낮추는 것)를 기조로 진수의 '삼국지'에 주석을 달았고 나관중이 그 주석에 근거하여 연의해 결국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의가 왕왕 전개돼 왔다. 이문열 '삼국지'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존유폄조의 기조를 뒤집어 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도 하나, 본격적으로 뒤집은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게 나관중 '삼국지'를 본격적으로 뒤집는 작품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기본지침을 '삼국지 해제'가 친절하게 제시해 주고 있어 흥미롭다. '삼국지 해제'는 우선 삼국지에 대한 방대한 연구가 고도의 편집기술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모여 있어 독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충실한 인명 사전까지 부록으로 붙어 있어 '삼국지' 마니아들에게는 필독서가 될 만하다.
그리고 나관중 '삼국지'의 사상적 배경까지 일일이 분석해 비판하고 있는 대목은 그 당시 정치와 역사에 관한 지식을 풍성하게 안겨주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하다. 병력의 과장된 숫자까지 지적해 내고 있으니 나관중이 다시 살아나 '삼국지 해제'를 읽는다면 낯이 뜨거워 숨을 곳을 찾기에 급급할 것 같다. 그러면서 나관중은 이렇게 변명할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이야. 소설을 그런 식으로 읽으면 어떡하나."
사실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허구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담지 않았다고 시비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 소설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은 이유와 배경은 파헤쳐 볼 만하다. 더 나아가 허구화의 범위와 정도가 과연 합당했는가를 검증해 볼 필요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 해제'는 기존의 '삼국지'를 새롭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소설을 분석하는 데도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또한 '삼국지 해제'는 한국사와 '삼국지'를 비교하기도 하고, 현대의 정치 경제 상황에 어떻게 '삼국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기업 전략에서 요즈음 대두되고 있는 '잠재적 라이벌'이라는 개념도 '삼국지'의 예를 들어 보면 훨씬 쉽게 이해된다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 전쟁으로 21세기 역사 판도를 바꾸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 즉 아메리카니즘도 '삼국지'의 천하사상으로 풀어볼 수 있다고 한다. 아메리카니즘의 뿌리로 로크와 캘뱅이즘, 물질주의와 보수주의를 들 수 있는데, 중국인의 천하사상과 공통점이 있고 무엇보다 아메리카니즘은 공격성을 띨 수밖에 없다고 날카롭게 분석한다.
'삼국지 해제'에서는 동서양 학자들의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 무수히 많다. 그만큼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장정일을 비롯한 필자들이 울창한 독서의 숲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는 사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내용이 있을지는 모르나 배워 본받을 내용은 별로 없는 책이다. '삼국지'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이다. 정치, 문화, 경제가 삼국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나라인 셈이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도 삼국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다만 삼국지를 극복하기 위해 '삼국지'를 읽을 뿐이다. 그런 뜻을 '삼국지 해제'는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조성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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