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주)의 최대주주가 최근 외국계 투자사로 바뀌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어 당사자인 SK는 물론,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SK(주)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영국계 투자기관 크레스트 씨큐러티즈의 실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이후 갑자기 대량 매수에 나서고 있어 투자 의도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투자인가, 적대적 인수·합병인가
크레스트 씨큐러티즈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SK(주) 주식 1,096만8,730주(970억7,326만원 어치)를 장내 매수해 8.64%의 지분을 확보, 기존 최대주주였던 SK C&C(8.49%)를 제치고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조세 피난지역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투자기관으로 증권전문가들이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로 추정하고 있는 이 회사는 공시를 통해 이번 지분매입에 대해 "경영권 획득이 아니라 수익창출이 목표"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말 SK(주)의 장부상 주당가치는 4만1,000원이었지만, 4일 종가는 9,25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크레스트 씨큐러티즈의 갑작스런 1대 주주 부상이 SK그룹에 대한 적대적 M&A 가능성이 나도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에 주목하고 있다. SK(주) 주가가 폭락했을 때 싼값에 사들여 자회사인 SK텔레콤 등 그룹계열사를 장악한 뒤 제3자에게 경영권을 넘기면 아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데다 주가도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단기간에 집중 매입했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서 "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보유주식을 높은 가격에 팔아 프리미엄을 챙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SK 경영권 방어 가능한가
SK는 일단 크레스트 씨큐러티즈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진위 파악에 나섰다. 또 아직까지는 적대적 M&A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계열사 등 우호적 지분에 자사주까지 합치면 전체 지분의 23.5%에 달해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면서 "만약 적대적 M&A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될 경우 자사주 매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SK(주)에 대한 계열사와 오너 일가의 지분은 13.26%로, 자사주 10.24%까지 합치면 모두 23.5%에 이른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