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개혁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2일 국정연설을 계기로 선거법 개정 문제가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치권은 17대 총선 선거구 획정 작업조차 시작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선거법상 총선 1년 전인 이 달 15일까지로 돼 있는 선거구 획정안 국회 제출은 이미 물 건너 갔다.여야간 예상 쟁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한다. 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중대 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영남에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지만 우리는 호남에서 어렵다"며 반대다. 민주당도 이를 간파하고 내부적으로는 중대선거구제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다음으로 소선거구제 유지를 전제한 선거구 인구편차와 의원 수 조정문제.
헌법재판소는 이미 2001년 10월 최대 3.88대 1에 달하는 현 선거구 인구편차가 위헌이라며 3대1 수준으로 고쳐야 한다고 판결한 상태다. 국회 정개특위에선 한 선거구의 최소 대 최대 인구수 안으로 '10만명 대 30만명' '11만명 대 33만명' '12만명 대 36만명' 등 세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첫번째 안은 의원 수가 최대 307명까지 늘어나는 게 문제다. 세번째는 호남 의석이 5석 가량 줄어 민주당이 기피하고 있다. 따라서 결국 '11만명 대 33만명'쪽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이 경우 의원 정수는 273명에서 290석 안팎으로 늘어나게 된다.
여권이 추진 중인 권역별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새로 등장한 논란거리. 노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한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고쳐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제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도 타파 명분을 충족시키려면 비례대표 수가 권역별로 최소 10명, 전체 6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다. 이는 현재 46명인 비례대표 의원의 증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행 의원정수 273명을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 수만 늘리면 지역구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선거구 획정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최소한 의원정수를 IMF 이전인 299명 정도로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직인수위도 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100명 등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늘려 '최소인구수 13만명 최대인구수 39만명'을 기준으로 지역구를 조정하는 안을 국회에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처럼 복잡한데도 여야는 선거구 획정위조차 구성하지 않은 채 마냥 느긋하다. 과거처럼 가을 정기국회부터 '벼락치기' 논의를 시작해 총선을 코앞에 두고서야 당략에 따라 졸속으로 선거구를 정하는 구태를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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