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학번 부산대 운동권 출신인 이호철(李鎬喆·45) 청와대 민정1비서관은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 곁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중요한 선거를 치를 때나 정치적 고비에 처했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불꽃처럼 일하다가 할 일이 없어졌다 싶으면 미련 없이 떠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는 한, 있으라고 할 때까지 있어볼 참이다.그는 대학시절 민주화 투쟁을 하다 1982년 '부림사건'으로 재판 받는 과정에서 무료 변론을 하던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 대통령은 함께 구속된 친구의 변론을 맡고 있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그가 권해주는 운동권 서적을 탐독했을 정도로 민주화 운동에 있어선 그가 노 대통령의 선배였다. 노 대통령이 이 비서관을 "영혼이 맑은 사람", "정치적 동지"라고 부르며 최상의 신뢰를 보내는 것도 20여년에 걸친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88년 노 대통령이 처음 금배지를 달았을 때 정치판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서울로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89년 노 대통령이 '5공 청문회'의 정치적 변질을 개탄하며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을 때 이를 만류하다가 발목이 잡혔다. 의원 보좌관, 지구당 기획실장 등으로 상당기간 노 대통령의 곁을 지키게 됐던 것이다. 이후 이 비서관은 14대 총선, 부산시장 선거, 16대 총선, 지난 대선 등 선거 때만 나타나 노 대통령을 돕다가 이내 학원 경영, 여행사 운영 등의 생업으로 복귀했다. 매번 "나는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다", "노짱 옆에 있으면 돈벌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지금도 맡겨진 일이 끝나면 교편을 잡고 있는 부인과 가족이 기다리는 부산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방배동의 처형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그는 "부산이 더 살기가 좋다"며 아예 이사할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여전히 자신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 부산 인맥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 비서관은 "가능하면 부산 사람을 써달라고 인사 추천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만 바라보고 어렵게 지탱해온 부산의 정치 역량들에게 일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청와대 비서관급 이하 인맥이, 이 비서관 팀과 노 대통령의 또 다른 핵심 측근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팀으로 나뉘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두 사람이 갈등 관계에 있다는 소문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 이 비서관은 "이 실장과는 가끔 티격태격한다"면서도 "잘해보려고 그런 것이고 서로 보완해가며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견은 있으나 다툼은 아니라는 얘기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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