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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규 PD 세렝게티에서 보낸 5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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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규 PD 세렝게티에서 보낸 50일]

입력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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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초원의 남쪽 마카오 지역은 안개가 끼거나 해가 떨어져 깜깜해지면 주위에 위치를 확인할 만한 산이나 나무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십중팔구 길을 잃게 된다. 한번은 '치타스'를 쫓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어느새 해가 지고 말았다. 대략 숙소의 위치를 가늠해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아 어두컴컴한 초원 위를 달리는데 어둠 속에서 그 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장소가 나타났다.앞에 놓인 길은 해자처럼 푹 파여 있어서 건너갈 수가 없었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번 그렇게 반복해도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하자 우리 차 기사인 현지인 로날드가 파인 길을 건너가려고 시도했다가 차 바퀴가 빠져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쳤던 비마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도 바퀴만 헛돌고 차가 좀처럼 빠져 나오지 않는다. 혹시 사자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속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카메라 감독 박화진씨와 힘을 합쳐 차를 밀어낸 뒤에야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한참 뒤 조연출로부터 우리가 아마 숙소와 정반대 방향으로 간 것 같다는 무전연락이 왔다. 그러나 담당 레인저와 함께 구조하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무전은 끊어져 버렸다. 할 수 없이 갖고 있던 나침반을 보고 무조건 동쪽으로 한참 달리니 세렝게티와 응고릉고르 자연보호구의 경계선이 보였다. 그 순간 차가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서버렸다. 지난번과 똑같이 기어박스에 고장이 난 것 같다고 했다. 아까 푹 파인 곳을 무리하게 건너려다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차마저 서버렸고 구조하러 오는 차도 무전이 끊겨버려 초원에서 밤을 새는 수밖에 없었다. 차 라이트를 켜 놓은 채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려도 통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적막이 흐른 후 끊겼던 무전이 다시 이어졌다. 이쪽으로 구조차 떠난 차의 배터리가 재충전이 안 돼 숙소로 돌아가 새 것으로 바꾼 뒤 다시 나오느라고 늦었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고 조연출과 레인저들이 탄 차가 나타났다. 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지난해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6개월 간 작업을 하면서도 모두들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촬영 시작 20일 만에 카메라맨 백승우씨와 자연생태 전문 스틸촬영가인 김수만씨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과로했나 싶어 며칠 쉬면 낫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열이 오르고 머리가 아파서 고통을 참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서둘러 비행기를 불러 이들을 케냐의 병원으로 후송시켰다.

김수만씨는 말라리아로 판명됐으나 치료 후 현장으로 복귀, 작업을 마치고 귀국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백승우씨는 원인 모를 아프리카 풍토병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져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중도에 귀국, 아직까지 국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게다가 촬영이 거의 끝나 갈 무렵에는 카메라 감독인 박화진씨마저 말라리아에 걸려 현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 동안 새벽부터 '치타스'를 쫓아다니느라 심신이 지친 데다 카메라 스태프들의 발병으로 제작팀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MBC 시사교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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